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 별 Dec 03. 2019

누군가와 함께라면

프라하 살이 보름 차,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프라하 한 달 살기 16일 차, August 16th


[누군가 함께라면]

이 곳 프라하에 온 지 벌써 보름이 지나 16일째다. 중요한 일이 있음을 알아챈 몸이 7시부터 기상 신호를 보냈다. 맑은 정신으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언제나 써 놓았던 글은 그다음 날 다시 한번 본인 스스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글은 마약 같은 것이라 취했을 땐 객관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취했을 때 글은 보다 더 진중해진다.

캐나다 대사관에 적합한 포지션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틀 정도는 해당 역할에 대한 공고를 계속 읽어보고 하루는 나의 전 직장 경력을 정리해보고 매칭 되는 점을 찾아 초안을 써 두었다. 방에서는 몸이 편해서 30분에 한 번씩 게을러 지기 때문에 초반에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외부로 나오는 것이 좋다. 나는 동네 조용한 개인 카페를 찾았다. 이 카페 이름은 Estella Café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카운터 앞에 두 테이블 그리고 안쪽에 2개의 의자 테이블과 2개의 소파 테이블이 있다. ”도브리뎬”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고, 카운터에서 패션 감각이 좋은 사장님으로 보이는 여성분과 조금은 어려 보이는 남성 분이 나를 맞아 주셨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조각 케이크 하나를 시켜 자리를 잡고 앉아 나의 2년을 되돌아보며 또 앞으로의 역할에 집중해서 글을 써내려 갔다.

아무래도 그날 쓴 글도 오늘 내가 읽는 글도 느끼는 것이나 지향하는 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단, 그때는 보이지 않던 문맥상의 뉘앙스나 문법 정도를 수정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보다 날카로운 눈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고 그리고 순간 떨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간절함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전 11시에 모든 것을 마무리 지었다. 지원도 완료했고 긴장해서 몰랐던 배고픔도 해결했다.



오후에는 Museum Kampa(캄파 박물관)에 갈 예정이다. 큰 대형 미술관은 아니지만, 3-4개의 전시를 열고 있는데 전시 하나는 영구적으로 지속하는 메인 전시이고 나머지는 시즌 전시이다. 건너편 공원에서 해당 전시관 건물 외벽에 있는 Helmut Newton이라는 사진작가 이름을 보았고, 검색해서 그의 전시가 10월 중순까지 진행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집을 나선 시간은 3시 정도였다.


트램을 타고 전시장 인근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전시장으로 가는 길도 예쁘고 전시장 바로 앞에는 공원도 있다. 여유가 되면 천천히 인근도 구경하길 추천한다.



막상 도착한 전시장 바로 앞에서 허기를 느꼈다. 배가 고프면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하지 못한다. 실제 경험이라 무시할 수 없다. 박물관, 전시회, 갤러리에 가기 전에는 무조건 식사나 간식이라도 먹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배고픈 자에게 예술은 사치다. 전시장 오는 길에 많은 레스토랑을 지나쳤는데 나는 역시나 어리석은 인간이다. 전시장에 붙어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금액은 안 봐도 비쌀 게 뻔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피시 앤 칩스의 금액이 무려 335Kc으로 한화로는 2만 원이다. 한국에서도 한 요리에 2만 원이 비싼 편이지 않은가? 어제 먹었던 중국 덮밥을 119불 먹었던 것이 생각난다. 양이 워낙 많아서 포장해와서 두 끼나 해결했다. 관광지나 전시장에서는 식사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지난번과는 반대로 전시장에서 내가 앉아있었던 공원을 향해 앉았다. 보트도 다니고 비가 온 뒤라 덥지도 않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들고 간 책을 꺼냈다. 책은 Globe에서 산 덴마크의 휘게를 주제로 한 책. 이걸 읽으면 휘게의 정의와 나도 그들처럼 일상의 휴식을 좀 따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구매했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휘게를 설명해준다. 몇 명이 어떤 것을 하면서 무엇을 먹으며 어느 정도의 밝기 아래서 어떻게 휴식하는지. 프라하 오는 비행기 옆자리 스웨덴 친구가 그 책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라고 말해주었다. 배를 두둑이 채우고 전시장으로 갔다. 시간은 4시 40분 정도였고 전시는 6시 까지다. 입장하여 규모를 보고 1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 느꼈다. 여유 있게 보고도 한 바퀴 더 돌 수 있을 시간이다. 유학시절 만들었던 학생증은 2020년까지였다. 학생 할인을 받아서 120kc에 전시를 감상했다. 조금 비싸게 먹은 점심이 위안이 되는 순간이었다. Helmut Newton은 독일 출신으로 패션 포토그래퍼의 거장으로 불린다. 또, 여성의 몸을 사랑한 그리고 누드를 사랑했던 그는 싱가포르, 호주,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활동하였고 마지막 순간은 미국에서 끝이 난다. 현실적이고 관음적으로 어떤 제약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 시대에 이런 사진들을 찍고 연출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전시장의 작품이 아니었다. 전시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태도, 매너였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것도 아니었는데 그들 중 그 누구도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한국에서 다양한 전시를 다녔다. 주말이나 방학 때 전시장에서 작품들을 보며 작가들의 생각을 추측해보고 그때의 분위기를 상상해본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인스타라는 요 물건(SNS) 때문에 전시장의 전시작품이 배경 사진이 되어버렸다. 체험이라는 콘셉트로 전시가 진행되는 것은 너무 좋지만 일반 전시회는 작품 감상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했다. 특히 주말에는 몇 백 명 몇 천명의 사람이 줄을서 번호표까지 받으며 힘들게 들어가서는 정작 등 돌려 그들은 본인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작가의 소중한 작품들은 배경이 된다. 이러한 현상에 질려 점점 국내에서는 전시를 멀리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었다. 사진 찍는 사람을 돈 내고 구경 온 것 같은 현상이랄까? 셔터 소리가 그렇게 소음일 수가 없다.  


6시가 좀 안되어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둘씩 또는 가족끼리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혼자 배낭을 메고 블타바 강을 따라 걸었다. 보름을 넘어서 느끼지만 나는 분명히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도 외로움이 한국에서는 간절했을 때가 있다. 너무 많은 것들에, 많은 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었던 시간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주 한적한 노르웨이 숲 속에서 일주일 동안 쉬다 오고 싶었다. 새가 노래하고 강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모닥불을 피워 놓고 나무들이 타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말이다. 한 번도 캠핑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가을에는 캠핑 하기를 버킷리스트로 올려야겠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둘러앉아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함께라면’ 좋을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이 바람을 함께 느끼고 풍경을 감상하며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다 가도 재미있는 구절이 나오면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작은 것에 행복을 나눌 그런 한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오늘도 해가 저문다. 별거 없는 하루지만 내일의 걱정 없는 느슨한 하루였다. 보름 정도 지난 타지 생활에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며칠이 지나면 그곳 역시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내 마음가짐이 바뀌는 것이지 환경에 급격한 변화는 없다.





작가의 이전글 프라하 살이 10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