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참을 수 없는 생활의 가벼움

가계부를 쓰기 시작할 때의 상태

by 한들

어딘가에 속한 곳도 없고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 무늬는 주부지만, 집안일에도 몰입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그런 상태로 한동안 머무르게 되었다. 이전에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반백수 상태를 맞이하다 보니 어색하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하고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할 일이 없고 몸이 편하면 걱정도 없어질 줄 알았건만, 그 반대였다. 다른 곳으로 정신을 분산시킬 수도 없고, 오로지 나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서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가?’ 각종 걱정과 근심이 마음속에서 올라왔다.


전업주부의 세계에 나 홀로 자유낙하


일만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막 집중해서 잘해줄 텐데. 집도 잘 치우고 예쁘게 해 놓고 살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개뿔… 나는 여전히 육아나 집안일에 별로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었다. 그냥 시간만 많아졌다.


아침에 첫째 아이 깨워서 학교 보내면 큰 일과가 끝났다. 둘째 아이는 집에서 보육을 했기에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했다. 온종일 아이만 뚫어져라 보는 게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글이라도 쓰려고 하면 아이는 수시로 정신을 흐트러 놓았다. 여러모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무얼 할 수도 아니할 수도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이렇게 답답하고 어정쩡한 시간을 마주하게 된 게 처음이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고 몸은 축축 늘어지기만 했다. 의욕이 한 번 떨어지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한심하게 여겨졌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 해졌다.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쓸 줄 아는 능력이 나에게 없었던 것이다. 마치 고3 수험생활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그 자유가 감당이 안 돼서 고통스러워하는 대학 신입생 같았다. 그래도 대학에서는 나랑 똑같이 어리바리한 동급생도 옆에 있고 선배들이 오리엔테이션 같은 것이라도 해주었는데, 이건 뭐 전업주부의 세계에 나 홀로 자유 낙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냥 현재를 즐길 순 없는 걸까?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그런 시간이 무한 반복되었다. 전업주부의 세계엔 시간성이란 게 없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축적이나 진보도 없고, 무한 루프를 반복 통과하다 보면 어느새 늙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도 다 증발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런 상태가 행복하고 안락하다면 괜찮았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매일을 놀이처럼 살아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애를 둘 씩이나 낳은 이 아줌마의 머릿속엔 이미 잡다한 지식과 경험이 잔뜩 들어있다. 순수하긴 커녕 계산하는 것에 익숙하고 노는 것보단 노동이 몸에 더 익숙하다. 그러니 가만히 있으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 아무런 조치 없이 이런 상태에 오래 머물면 신경증을 얻게 된다.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 많아지고, 물건을 찾기가 어렵고,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괜스레 화가 나고 그러다가 푹 꺼지기를 반복했다. 전형적인 우울증의 증상이었다. 우울증을 고치겠다고 산골에까지 들어갔는데도, 증상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가끔은 좋아졌다 또 나빠지곤 했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에선 시골이든 도시든 다 좋지 않았다.


하루 삼시세끼 먹은 걸 기록하기 시작하다


이런 불편한 상태로 계속 살아갈 순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워야 하니, 엄마가 힘을 내야 했다. 그래서 문구점에 가서 손바닥만 한 수첩을 하나 샀다. 이 당시에는 일기를 쓸 수도 없는 상태여서, 하루에 무얼 먹었는지만 간단히 적어보았다. 어제 뭐 해 먹었는지 기억하려고… 어제와 오늘이 다른 날이라는 것을 떠올리려고…



이런 사소한 기록이 정신을 차리는데 생각보다 효력이 있었다. 이 일기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퀀텀점프를 이룩했으니. 삼시세끼 해먹은 내용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 보다 복잡한 것을 적기 시작했다. 1월 17일의 기록이 ‘아침- 빵, 커피, 메추리알, 잡채, 계란말이…’ 였는데, 그다음 2월 19일 메모는 ‘종교와 세속은 밀접해 있고 그 가운데 영성은 오히려 소외되었다’이다. 멈췄던 머리가 서서히 가동을 시작했다. 어떤 것이라도 시작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서서히 들어왔다.


이런 맥락에서였는지, ‘가계부를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주부가 일상을 기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가계부를 적는 것이 아닌가.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보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다 알 수 있다. 뭘 먹으려고 해도, 뭘 하려고 해도, 누굴 만나려고 해도 돈을 써야 하니까 말이다. 돈이 오고 가는 길에 나의 삶이 들어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소비는 삶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가계부를 쓰며, 생활을 들여다보면 앞으로 나갈 방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삼시세끼 적는 것만으로도 심리가 안정이 되었으므로, 생활 전반을 모두 반영하는 가계부를 쓰다 보면 삶에 새로운 전환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이도 저도 아니어도, 막연한 불안감을 견디며 사는 것보단 현실을 인식하는 게 정신 건강에 더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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