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가계부를 쓰는 모험을 시작했다

이건 ‘가계부의 심리학’이 될지도…

by 한들

무슨 마음에서인지, 올해 초에 가계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전에도 가계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래서 가계부 앱도 깔아보고, 액셀에 한 달치 지출을 쭉 적어보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한 번 끓어오른 의지는 금세 푹 꺼져 버렸고, 가계부의 ‘가’ 자도 생각나지 않았다. 또 그렇게 정신없이 생활을 하다가, 돈에 대한 불안감이 올라오면 가계부를 써야 한다는 충동이 올라왔다.


가계부를 써야 한다는 생각


올해도 가계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연초여서 그랬을지 모른다. 문득 ‘가계부나 써 볼까?’하는 생각이 툭 떨어졌다. 무언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끓었던 것이다.


그 생각을 시작으로 가계부를 쓰게 되었다. 이 생각을 떠올릴 때, 아니 가계부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몰랐다. 앞으로 내가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게 될지…….


가계부를 쓴다는 건 단순히 쓴 돈을 공책에 적어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매듭짓고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분산되었던 마음이 차분이 내려앉고,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그동안 내가 가계부를 쓰지 못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 삶은 총체적으로 정리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 더 좋은 것, 더 재미있는 것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 행해 왔던 것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많은 것이 뒤죽박죽 엉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돈은 그 많은 것 중의 일부분이었다. 정신없이 벌고 정신없이 써 버리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돈이 생기면 뭉치째 저금을 하거나 주식을 사기도 했다. 그러면 자산이 생긴 것 같아 가슴이 부풀었지만, 이 뭉치는 곧 해체되곤 했다. 써야 할 곳이 여기저기 생겼으니까 말이다. 앞으로 모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계산해 보면 마이너스였다. 참 실속이 없었다.


상쾌하고 가볍게 발걸음을 내딛고 싶었다


뒤뚱뒤뚱 사는 듯한 느낌을 버리고, 발걸음을 상쾌하게 만들고 싶었다. 돈 때문에 불안한 것도 싫었고 무언가에 꽉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도 싫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재정 상황을 눈앞에 두고 환히 볼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전에 실패한 적이 많아서 도움이 좀 필요했다. SNS에 가계부를 판매한다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돈을 들여서 온라인 가계부 파일을 샀다. 자동으로 차트도 만들어줘서 한눈에 돈의 흐름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파일을 사서 그 달 쓴 돈을 쭉 적어 보았다. 절망이었다. 남편이 버는 월급의 1/3 정도가 오버되고 있었다. 어떻게 생활을 지탱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 신용카드의 힘이 생각보다 더 세구나!


현실을 대면하니 가계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이 가계부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의 생활도 그다지 흥청망청이 아닌데, 더… 아니 확 줄여야 한다니…….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삶은 요원했고, 계속 빚에 시달리며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답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 온라인 가계부도 두 세 달 쓰다 그만두고 말았다. 기록하는 건 좋지만, 쓰면 쓸수록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모든 걸 그만두지 않았다. 역시 SNS에서 가계부 모임을 한다는 공지를 읽게 되고 선뜻 참여 신청을 해 보았다. 여기에서는 가계부를 쓰는 방법도 알려주고, 매일 인증 사진을 올려야 하기도 했다. 평소의 나라면 결코 참여하지 않았을 것 같은 모임이었다. 무언가 해야 할 것이 많아서 좇아가기에 버거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버퍼링이 막 일어났다. 처음에 세팅할 것도 많고 매일 가계부 쓰는 것도 힘든데 인증도 해야 하고, 오픈 채팅 방에는 수 십 개의 톡이 마구 올라왔다… 마음을 내려놓고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하나씩 해 나갔다.


가계부를 쓰는 시간은 나를 대면해 나가는 시간


이 가계부 모임에 참여한 게 4월… 현재 11월. 8개월째 가계부를 꾸준히 쓰고 있다. 나 스스로가 기특하다. 나이 마흔을 훌쩍 넘겼건만 소소한 습관 하나 잡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다. 배운 것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었던 셈이다. 가계부를 쓰는 시간은 이런 당황스러운 사실을 가감 없이 대면해 나가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가계부를 쓰는 게 능숙하진 않지만,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있다. 가계부를 써서 몇 천 만원씩 돈을 모은 것도 아니고, 아파트를 장만한 것도 아니다. 다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계부를 통해 세상을 조금은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고작 가계부 하나 쓰는데, 이렇게 마음이 쿵쾅거리며 요동을 치는지 몰랐다. 내 마음이 유난히 작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스펙터클이 가계부를 앞에 두고 벌어졌다. 그 여정이 외국 여행 나간 거보다 더 재미지기기에 여기에서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가계부를 써야 하는 사명감(?)에 불타지만 지속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가계부 써서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다 삶 자체가 자유로웠으면 하고 바라는 이가 있다면, 배운 게 많아 지적이어야 하는데 어딘가 모지란 한 아줌마의 일상을 엿보고 싶다면, 이 매거진에 함께 하시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6. 가계부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