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 토론을 넘어선 커뮤니케이션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내가 ‘갈등’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석사를 졸업하고 난 후다. 그때 진로 문제로 머리가 꽤 아팠다. ‘이제 그만 취직을 해야 할까’, ‘공부를 더 해야 할까’ 이 갈림길 사이에서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결국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갈등’에 대해서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석사 과정 때 대학원에서 두뇌한국21(BK21:Brain Korea 21)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주제가 ‘토론과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 팀에 속해서 나는 ‘논증’, ‘설득술’, ‘스피치’, ‘토론’ 등의 내용을 공부했다. 꽤 재미있는 내용이었지만, 배울수록 더 깊게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메시지’, ‘쟁점’, ‘논리’, ‘반박’, ‘공격과 방어’ 등의 개념이, 처음에는 흥미를 끌었지만 어느새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스피치는 ‘화자’인 ‘나’를 돋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상대를 고려하긴 하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목적을 밑에 깔고 있다. 토론은 상호작용성이 더욱 강조되지만, 찬반 양측 대립과 공격을 통해 주제의 면모를 통렬하게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토론은 각자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비판을 통해 사실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나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이기는 것에 집착하여 상대를 겁주거나 비난하거나 낙담시켜 자신의 승리를 가져오려는 일도 발생한다. 물론 토론 수업에서는 ‘그러한 접근방식을 택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승패가 갈린다는 구조상 토론은 분노와 공격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으며, 이기고자 하는 충동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어렵게 한다.
스피치와 토론은 물론 배워두면 진짜 사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아나운서나 정치가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상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으면 확실히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고 얻는 게 많다.
그런데 나의 입장에서 ‘이것을 박사 과정까지 밟으면서 배워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어떤 학문 분야든 파고들면 한도 끝도 없이 깊어질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맞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사람과 관계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그때 지도 교수님께서 두뇌한국 21 2단계 사업으로 ‘갈등과 커뮤니케이션’을 들고 나오셨다.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갈등이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분야였다. '갈등’이 배울 수 있는 대상이라고? 그랬다. 나의 좁은 시야가 열렸고, 갈등을 공부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학위를 따고 싶어서도, 학자로 살기 위한 것도 아닌 ‘갈등’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서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그 이후 기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