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힘들 때 누가 친구가 되어줄까?

영화 <툴리>

by 한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를 낳는 일은 기쁘고 벅차고 설레는 일이다. 처음 초음파에서 ‘쿵덕쿵덕쿵덕’하는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감정이 감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엄마는 하혈을 계속하는 바람에 산부인과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는 믿기지 않아 긴가민가 했다. 부모님들께 소식을 전하고, 축하를 받으면서야 실감이 되었다.


그때는 잘 몰랐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줄지… 그냥 우웩 우웩 몇 번 하고, 배 불러서 ‘아!’ 소리 몇 번 내면 아이가 태어나는 줄 알았지.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왜 이렇게 엄마의 삶에 무지했을까?


삶의 변화는 바로 나타났다. 학기 중에 임신을 해서 강의를 계속 나가야 했다. 출혈이 있는 상태에서 유산 가능성이 있기에 집에서 누워만 있으라는 처방을 받았지만, 갑자기 강의를 그만둘 수는 없어서 학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나갔다.


집에 와서는 바로 누워 있었다. 강의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불만은 커지고, 최악의 강의평가를 받았다. 어차피 다음 학기부터는 강의를 할 수 없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자존심에 제대로 스크래치가 갔다. 앞으로는 절대 강의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일하고 학습하는 능력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일상을 챙기는 것도 힘들었다. 몸도 점차 무거워져서 빨리빨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천방지축이었던 나를 엄마가 되도록 아이가 제대로 훈련시키고 있었다. 자기를 키우는데 온 에너지를 쓰게 끔, 세상의 다른 곳에서 관심을 끄도록 만들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일이 더 커져 버렸다. 그렇게 잠이 많던 내가 밤새 잠도 못 자고 계속 젖을 물려야 했다. 어디를 가나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했고 말이다. 아이가 어떻게 될까 봐 항상 초긴장하며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았다. 설핏 자다가도 퍼뜩 깨서 아이가 숨을 쉬고 있나 손가락을 코에 갖다 대곤 했었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과 동시에 육체적, 정신적 손실로 인한 고통이 찾아왔다. 아주 찐하게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되었다. 눈물이 쏙 빠지지 않고는 아이를 키우기가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야 영화 이야기를 시작한다. <툴리>라는 영화에서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셋째 아이를 낳는 엄마 말로가 주인공이다. 이미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둘째 아들은 자폐 성향이 있어서 키우기가 더 까다롭다. 유치원에서도 아들을 받아줄 수 없다고 하여, 압박감을 더 느끼게 된다.


셋째 아이가 태어나고, 모유 수유, 유축, 기저귀 갈기가 반복되고, 아직 어린 다른 아이들은 철 모르고 집안을 헤집으며 다닌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야간 보모에게 연락을 한다. 야간 보모는 밤에 출근해서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다.

26살의 날씬하고 생기 있는 표정을 지닌 야간 보모 툴리는 아이도 잘 보고, 말로의 감정도 잘 살펴주며, 집안일도 깔끔하게 해 준다. 밤 사이 툴리의 활약으로 말로는 여유를 되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툴리는 기분이 엉클어진 채로 출근을 하고, 기분전환 삼아 도시로 나가자고 한다. 둘은 차를 타고 말로가 예전에 살았던 브루클린으로 향했다. 둘은 술도 왕창 마시고 클럽에 가서 신나게 흔들고, 화장실 가서 불은 젖도 짜내고 토도 하며 신나게 망가지며 논다.


여기에서 툴리는 이제 보모를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말로는 너무 아쉬워하며 툴리를 잡으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둘은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다 졸음에 취해 강에 빠지고 만다. 어찌 되었는지 말로는 물에서 빠져나왔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병원에서 반전이 밝혀진다. 사실 툴리는 말로의 결혼 전 이름이었던 것이다. 툴리는 실존인물이 아니고, 말로가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단어를 쓰자면, 말로는 산후 정신증을 앓았던 것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사람은 병에 걸려서 죽는 것이 아니다. 바로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병은 사람이 행동의 방향을 틀도록 하여 죽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 외부사람이 보기에 툴리는 병증이지만, 신생아를 키워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 말로를 구해준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로는 자기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나는 사실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 두 돌이 될 때까지 아이를 이모님에게 맡길 수 있었다. 산후도우미로 만난 분이었는데, 차분하고 좋으신 분이셨다.


아이도 돌봐주시고, 집안 청소에 밥과 간단한 반찬도 마련해 주셨다. 이 분이 계시는 동안 몸도 편했지만 마음도 안정이 많이 되었다. 아기를 보고 집안일을 하는 모습이 편안해 보이시는 분이었다.

너무 들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고, 일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셨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우리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난생처음으로 돌봄이란 걸 받아보는 느낌이었다.


그 기간 동안 좀 쉬면서 몸도 추스르고, 늦었지만 박사논문도 써서 졸업을 했다. 졸업 논문을 기반으로 다시 대학에 강의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분과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는데, 정말 한결같이 주중 아침에 성경말씀을 보내주신다. 통화를 하거나 만나진 않지만, 그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둘째도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잘 안 됐다. 다른 분을 추천해 주셨기는 했는데, 왠지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인연이란 게 그런가 보다.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둘째 때는 아이를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맡기고 싶지가 않았다. 첫 아이 때는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아기 씻기는 것도 못해서 벌벌 떨었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이 키우는 법을 많이 익혀서, 두 번째 신생아는 케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에서 말로도 야간 보모를 고용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한다. 비용은 부자인 오빠가 대신 내주기로 했고, 이미 두 아이 키우는데도 기진맥진인 상황을 보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오빠에게 돈을 받아야 하니 눈치가 보이긴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런 거다.


인생을 하청 맡길 순 없잖아


아기를 씻기고, 재우고,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시간 모두가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고, 그것이 모여 인생이 된다. 그런 걸 모두 빼고, 예쁜 얼굴과 말씨로 아이와 한 시간 놀아주는 것만으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생활에 치여서 왕짜증에 소리 지르며 아이를 대하는 것도 못할 짓이긴 하지만, 아이에게 들이는 모든 수고를 걷어내고 엄마가 될 순 없는 법이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기본적으로 상처 때문에 고통스럽고, 먹고 자는 것에 차질이 생기면 사람의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낸다. 그것이 신체의 증상이든, 정신적 증상이든 말이다.


육아 기간 동안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단절감이었다.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있어 외로울 새가 없지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세상과 연결이 끊어져 영원히 닿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이면 상당히 울적해진다.


이럴 때는 남편의 존재도 무용하다.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남편은 항상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그를 고립무원인 나의 세상으로 초대하려면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도 그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힘들 것이다. 새벽같이 나가서 일에 치이다 밤에 들어오는 삶도 여유가 없긴 마찬가지가 아닐까.


툴리도 매일 밤 게임에 몰두하는 남편을 보고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성실하게 회사에 다니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재충전을 하기 위해 게임을 하다 잠에 드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왜 나한텐 신경도 안 써? 당신은 왜 애를 안 봐?’라고 탓하고 미워하고 싸워봤자 소용없다는 거 안다. 벌써 셋 째다. 남편이라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삶이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 문제라는 거 안다. 그리고 싸우는 것도 기운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럴 때는 나와 친구가 되는 법 밖에 없다. 말로가 툴리를 불러낸 것처럼 말이다.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향해 허무한 화살을 쏴대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방법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일는지 몰라도.


물론 이런 시기는 지나가게 마련이다. 툴리도 결국은 말로를 떠나간다. 툴리가 계속해서 말로를 떠나지 않고 집착을 한다면, 영화는 갑자기 장르를 바꿔 호러무비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크고, 엄마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발견하게 된다. 그 문을 최대한 온전한 몸과 정신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나를 아주 좋은 친구로 만들어야겠다.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질책하지 않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친구가 바로 나 자신이라면, 어디를 가도 어떤 자리에 있어도 무섭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