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땐 함께여서, 홀로 있을 땐 혼자여서 좋다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진척되지 않고, 무엇을 시도할 수 없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미미할 때가 있다. 여자에게 있어서 아이를 키우는 기간. 모든 시간의 우선순위는 아이를 중심으로 정해진다. 아이 때문에 일어나고, 아이 교육 기관 스케줄에 따라 이동을 하고,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쉰다.
엄마에겐 대기 시간이 많다. 아이를 어딘가에 보내 놓으면 집에 가기도 애매하고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없고 일을 붙잡고 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시간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때 SNS 하고, 유튜브 보고, 쇼핑하고, 송금한다. 그러면 또 ‘휴~ 시간을 헛되이 썼어. 틈틈이 공부라도 하고 책이라도 읽으면서 유용하게 써야 하는데 헛되이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몰려온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혼자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족히 10년은 걸린다. 그때까지 이런 대기 시절을 보내야 한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렇게 어정쩡하게 아무것도 못하는 시절을 겪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어딘가에 갇히고 고립되는 기간을 견디고 나서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무려 27년을 감옥에 있었다. 이젠 고인이 된 전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억울한 선고를 받고 20년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소설가 황석영도 방북 사건을 이유로 5년간의 수감 생활을 했다. 조선시대 뛰어난 인물이었던 다산 정약용도 18년 간, 추사 김정희도 제주에서 9년 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오랜 기다림의 상징인 강태공은 72세가 되어서야 출세를 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갇혀 있는 시간은 활발한 활동을 제약했으나 더 깊어지는 기회를 주었다. 이들은 갇혀있는 동안에도 푸념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했다. 넬슨 만델라의 경우, 감옥 안에서도 공부하고, 그 안의 사람을 만나 토론을 하고, 백인을 가르치며 바꾸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신영복 교수는 옥중에서 동양고전을 파고들었다. 이때 정리한 내용으로 대학에서 동양 철학을 가르쳤고, 이것을 엮어 <강의>라는 책을 냈다. 난 이 책을 거의 1년에 걸쳐서 조금씩 읽었다. 시경부터 법가까지 동양 고전이 모두 망라되어 있고, 그것을 현대사회의 문제의식과 엮어서 해석한 부분이 좋아서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소설가 황석영은 감옥에서 책을 읽으면서 소설 <손님>과 <오래된 정원>을 구상했다고 한다. 장편 소설 <오래된 정원>은 단재문학부문상, 이산문학상을 수상하고, 이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황석영은 수감 이후에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보다는 창작 활동에 더욱 전념하여 걸출한 작품을 내놓았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목민심서>를 썼고, 끊임없이 독서하여 500여 권의 저서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같은 걸작이 제주도 유배 시절에 나왔다. 강태공은 노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도 낚시와 독서를 하며 때를 기다렸고, 72세에 주 문왕과 만나 최고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여기에 제시된 경우와 나의 육아 기간을 같이 놓고 보는 것은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내가 무슨 정치적 입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류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부당하게 갇힌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른 예시를 생각해 보자. 박완서 작가의 경우에는 결혼 뒤 다섯 명의 자식을 키우고 마흔이 되어서 등단을 해 작품 생활을 시작했다. 공지영 작가는 일찍 데뷔를 했지만, 결혼한 후 7년 정도 글을 쓰지 않는 공백 기간이 있었고, 그 뒤로는 쓰는 것마다 베스트셀러를 냈다. <미실>로 출세한 김별아 작가는 10년 동안을 무명으로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제시한 경우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고립의 순간을 겪고 난 후 사회에 의미가 있는 일을 하거나 작품을 내놓았다. 철저히 혼자가 되고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고립의 순간은 인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창조적인 사람은 고립된 상태에서 더욱 깊은 사고를 하게 되어, 평범하고 상투적인 상식선을 뚫고 들어간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금의 고립의 순간이 나에게는 아주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몸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좁은 환경에서 반복된 일을 해야 해서 지겹고 고되다. 그렇지만 이 시간을 그저 힘들어하며 보내기보다, 이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나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면 양육 이후의 시간이 달라질 것이다. 출소 이후. 무명 시절 이후. 양육 이후. 모든 고립된 시간 이후에는 어떻게 살게 될까? 그것은 결국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