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짠하고 펼쳐질 것이라는 무지

by 한들

어떤 일을 하려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어떤 것을 잘해서 성공을 하고 싶을 것이다. 잘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야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정도가 심해서 어설프게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손을 대면 '반드시' 멋지고 환상적이어야 한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그런데 현실이 그런가... 내가 손대면 뭔가 어설프고 어색하고 엉성하기만 한 걸.


사실 이런 기대는 욕심이기보다는 무지에서 비롯된 면이 많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른다. 그래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워할 줄 모른다’고 한다. 세상의 일은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것을 받아왔던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하더라도 이미 주위에서 봐 온 수준 정도로 자연히 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아주 예전에 방송작가를 잠깐 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장래희망란에 방송작가라고 썼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방송국 보조작가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꿈을 이뤄본 셈이다. 그런데 막상 겪어본 방송작가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늘 TV에서 보아왔던 깔끔하고 재미있고 완결성이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사실 엄청난 불확실성을 견디며,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조각을 모아 붙여서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야말로 밤샘 막일(?)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난 보조작가였기 때문에 프리뷰라는 것을 했다. 피디가 영상을 찍어오면 영상과 음성의 내용을 타이핑해서 기록해 놓는 것이다. 방대한 영상 자료를 그렇게 필사해놓지 않으면, 내용을 구성하기 힘들다. 말이 필사지, 한 프로 프리뷰를 하는데 며칠 밤을 똑같은 거 또 보고 또 보고 해야 했다. 나는 이 프리뷰의 벽을 넘지 못하고, 방송작가를 그만두었다. 사실 그 밖의 처우 문제도 있었고, 휴학 중에 방송국에서 일한 것이라 졸업을 해야 했기에 그만둔 이유도 있다. 인생의 문제가 늘 그렇듯 복합적으로 결정이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여하튼 정말 프리뷰라고 하면 질려버렸다.


그런데 이 일을 경험해 보기 전에는 이런 것을 알지 못했다. 수많은 방송 채널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자동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것 같으니까,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내가 만들어도 그렇게 ‘딱’하고 나올 줄 알았다. 현실에서 나는 프로그램 대본을 쓸 줄을 몰랐고, 프리뷰조차도 힘겨웠다. 머릿속에서는 ‘내가 이렇게 버벅거리면 안 되는데’, ‘내가 이렇게 하찮은 일만 하고 있으면 안 되는데’, ‘조금만 하면 바로 결과물이 나와 줘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프리뷰를 피해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여기에서도 '녹취'를 피해 갈 수 없었다는 것. 글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정리되지 않은 원 자료를 정리하는 게 필수 관문이라,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피해 갈 수 없었다. 게다가 연구실에서는 더 고단한 자료 정리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사 졸업 이후, 진로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난 이후,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학원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박사까지 땄는데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야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또한 오산이었다.


우선 학원을 하려면, 길거리에 수없이 간판을 내 건 학원처럼 상가를 빌려서 인테리어를 하고, 교실을 만들어 놓으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학원을 차리더라도 생각지 못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좌절하고, 집에서 공부방을 해 보고자 했다.

그런데 가르칠 내용이 없었다. 대학 강의자료는 많지만, 아이들을 위한 교육 계획과 자료가 없었다. 그것을 구상하였더니, 얼마를 받고 가르칠 것인지가 막막했다. 나 스스로 가격을 매겨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학생이 없었다. 학생을 찾아 나섰다. 초등학교 앞에 나가서 전단지도 돌리고, 주변 엄마와 수다도 떨면서 알렸다. 그럼에도 학생을 모으는 건 어려웠다. 우선 첫 학생을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명이 더 모였지만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공부방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여러 사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관련 카페도 들어가 보고, 유사한 과목 공부방에서 운영하는 카페에도 들어가 보았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서, 공부방 하나를 운영하는 데도 나름의 경영 노하우와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도 정말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사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니까 나에게도 쉬울 줄 알았건만, 세상에 어느 것 하나 그냥 되는 것은 없었다. 생각으론 모든 것이 ‘뿅!’하고 나타날 것 같은데, 직접 몸으로 돌파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처음부터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판하고 무시하는 마음을 자주 가졌었다. 다른 사람이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잘 모르는 영역에 진입했을 때, 옆에서 지켜보면서 ‘왜 그렇게 하냐’고 훈수 두는 것이 습관이었다. 자꾸 가르치려고 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으로 나의 존재감을 부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은 조언을 해주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말만 있는 텅 빈 조언이었기에 별로 영향력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여기까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나를 과시하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한 동안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되었다. ‘별 다른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감 놔라 대추 놔라 했니?’, ‘잘난 척하지 말라’고… 이렇게 나에게 말하면서 속이 쓰라렸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이것은 ‘세상의 일이 바로 짠! 하고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무지로 인한 것이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벌어진 어리석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모르면 배우면 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참견을 했었던 것이 나의 진심이다.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은 잘못이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지금에서야 사람이 왜 겸손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세상의 일 중에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겪고 이해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 누구나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겸허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조금씩 몸으로 부딪혀 해내면, 그제야 비로소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남의 세상’이 아니라 내가 만든 ‘나의 세상’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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