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끝맺음이 있어야 열매가 있다

나는 완성되는 순간이 두렵다

by 한들

‘김종욱 찾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인 지우(임수정 분)는 무언가 성취를 하려고 할 때마다 일부러 마지막 순간에 가 닿지 않으려고 했다.

호두과자를 먹으면 마지막 남은 한 알은 먹지 않고 버린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을 마지막 순간에 놓쳐 버리고, 재능이 있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자꾸만 마음에서 밀어 내 버리는 모습. 이거 나에게 참으로 와닿았다.


나도 완성되는 순간이 두렵다. 끝까지 가보는 것을 망설이고 차일피일 미루다 흐지부지 만들어 버리곤 한다. 끝맺음이라는 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은 아마도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어떤 일을 끝낸다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세상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평가받는 일이 참으로 부끄럽고 쑥스럽다. 나를 드러내고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을 선망하면서도, 막상 그런 자리에 가면 부끄러워서 자꾸 피하려고 한다. 이 두 가지 마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자꾸 어떤 일을 벌이되 끝은 내지 못하도록 막는다.


최선을 다하는 것도 꺼린다. 조금만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순간에 일부러 푹 꺼져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체력이 부족한 탓도 있는데, 몸이 아니라 정신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하도록 버티곤 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는 핑계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기보다는 할 수 있을만한 것을 더 하고, 그마저도 전력투구를 하지 않았다.


이런 망설임 끝에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무얼 얻으려고 그랬던 것일까?


대학원은 여러모로 나에게 시험대가 되어준 공간이었다. 대학원에서는 수업 때마다 발제라는 것을 해 가야 했다. 발제는 교재를 읽고 내용을 요약해서 발표하는 것이다. 매주마다 벅찬 텍스트를 읽어 가는 것도 힘들었는데, 내용을 요약정리해야 하고, 그것을 내 말로 풀어내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이때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 그건 공부한 논문이나 교재의 내용이 아니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발표를 할 수 있는 정도로 발제문을 만들어 간다는 행위 자체였다.


두 번의 졸업 논문은 또 어떻고. 수 십 번을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시간에 이걸 하고 있나’, ‘이 시간에 돈을 벌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중요한 시국에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논문이나 쓰고 있어도 되나’하는 생각을 반복해서 했다.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것을 끝내면 무엇이 남나?’, ‘이것을 끝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것이었다. 졸업을 한다고 해서 자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이걸 끝내야 하는 것일까 되물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시간에 논문에 더 집중을 하거나 휴식을 취했더라면, 마음고생이 덜 했을 것이다.


나완 다르게, 어떤 교수는 박사 논문을 쓸 때가 가장 편하고 즐거웠다고 한다. 오전 세 시간 동안 박사 논문을 쓰고, 오후 시간은 거의 테니스를 치면서 보냈다고… 이건 외국 사례라 그럴 거야…라고 또 반박을 해 보았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논문이 나오는 것도 취직 자리가 생기는 것도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지지고 볶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다 내면에서 울려 퍼진 완성에 대한 두려움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 두려움의 목소리에 너무 많은 시간 귀를 기울인 나머지 박사 논문을 쓰는 것만 더뎌졌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붙잡고 결국 끝을 냈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논문 심사하러 가기 전 날에는 아이 돌발진이 일어나서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도 가서 심사를 받았고, 그날 바로 통과되었다. 천천히 쓴 만큼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박사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짜잔~!’ 무언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면의 변화가 생겼다. 학위가 아니라, 그 시간을 견뎌낸 나 자신에 대한 신뢰. 또다시 다른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끝까지 유지하고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에 대한 기대가 생긴 것이다. ‘할 수 있을까?’에서 ‘해 봤잖아’로 바뀐 것이다. 이 마음을 얻기 위해서 그 오랜 시간을 마음 졸이면서, 두려움에 내 마음을 빼앗기면서, 밤마다 치맥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흔들리더라도, 불안하더라도, 두렵더라도, 우선 시작했다면 끝을 보아야 한다. 지금은 나를 믿을 수 없지만, 그 마음을 누르고 성과를 나에게 보여주면, 나는 나를 믿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보상을 얻기 위해서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 자신을 믿음직스럽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서 나만의 과제를 만들고 도전하고 끝맺음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달려보고, 에너지가 바닥을 칠 때까지 해보고 나서, ‘그래 잘했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끝을 내는 것이다. 끝을 내야 그제야 믿음의 열매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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