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능력보단 그릇을 만들길

능력으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나진 않는다

by 한들

요즘 요식업계에서 백종원이 대세다. 백종원이 운영하는 더본코리아에서는 매출 1,000억을 찍었다고 한다. 친할머니께서도, 그리고 시댁에서도 식당을 운영하셨다 보니, 요식업에 관심이 많다. 성공하는 식당 비법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동영상 강연도 몇 개 챙겨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식당이 성공하는데 맛은 30% 정도를 차지한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식당을 가보면 음식의 맛이 특출 나게 뛰어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맛이 없진 않았지만… 역시 장사를 하는 데에는 맛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건가.


요식업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능력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겠지만, 능력만으로 성공을 하는 건 아니다. 대학교에 있으면서 능력 있는 사람을 많이도 봤다. 국내 굴지의 대학에 교수로 있는 사람은 얼마나 능력이 출중한가. 동문 중에도 공부도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중에서 아주 일부만이 정말 교수다운 교수가 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아주 일부만이 성공한 삶을 거머쥔다. 심지어는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앉거나, 부를 얻은 사람도 있다. 이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각각의 영역은 서로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해당 분야의 능력을 갖추는 것, 지위를 얻는 것, 돈을 버는 것은 서로 연관은 있겠으나, 확실히 다른 영역이다. 음식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되겠다고 생각을 해도, 음식을 하는 파트와 돈을 버는 파트는 서로 다르다. 음식만 열심히 하고 돈을 버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저 음식이 맛있는 식당이 된다. 맛이 어느 정도 되면서 돈을 버는 노력을 기울여야 돈 잘 버는 식당이 된다. 직장에서도 사람을 잘 다루는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많은 연봉을 가져가고, 그 직장에 진정으로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회사에 남는다. 단지 능력이 있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변의 엄마를 보면, '자신이 손재주나 음식 솜씨는 있는데 돈을 받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시도를 해볼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아이템이 문제가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따로 배우셔야 한다’고 말해준다. 학위가 있고 여러 능력이 있어도 곧장 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은연중에 가르친다. 요즘에는 그런 공식도 다 깨졌다고는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고정관념은 여전하다.


더군다나 돈을 벌겠다고 작정해도 돈이 벌리는 것이 아니다. 각종 마케팅 수단을 동원하고, 좋은 길목에 자리를 잡아도 그저 그렇게 운영되는 음식점이 많다. 그건 왜일까? 사업의 가장 핵심부에는 운영하는 ‘주인 사람’이 있다.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가게의 성패가 갈리는 듯하다. 가게 주인의 영혼이 맑고(?), 사람을 끌어당기고, 운이 좋고, 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리더십이라고도 한다.


나의 전공을 살려서 소통 이론을 잠깐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에는 3가지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이다. 쉽게 풀어보자면,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이 믿을만한지 아닌지, 파토스는 듣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지, 로고스는 설득의 내용이 논리적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50% 이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에토스이다. 즉, 설득하는 사람 자체를 믿을 수 있으면, 그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해도 설득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잘못된 얘기를 해도 그렇다고 믿기도 한다. 가까운 예로 대통령 선거할 때 많은 사람들이 공약 현실성 여부나 과거 행적 등을 면밀히 따져본 후에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그저 사람이 좋아 보이는 후보, 호감이 가는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그래서 사람을 잘못 뽑아 놓고 고생을 해도, 또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인상과 호감이 가는 정도를 보고 투표를 한다. 인간은 결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여러 학자들이 분석한다. 이건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의 문제이니 당연한 것일까.


이것을 보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좋은 아이템을 고르고 혼자서 애써 노력하면 알아주겠지 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매력을 가지고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한다. (단, 능력은 이 매력을 구성하는 일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야 관심을 끌고 만남이 이뤄진다. 이 연결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다시 말해, 능력에 우선해서 인간으로서 인성과 소양을 잘 갖추고 항상 밝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을 끌어들이고 이러한 만남이 기회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바로 서 있어야 한다. 어떠한 위기나 실패를 대면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바로 서야 하지만, 엄청난 성공을 받아들일 때에도 내가 바로 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커다란 성공도 그저 한바탕 꿈처럼 휑하고 사라져 버리고 만다. 손자병법에 손무가 오왕을 도와서 초국을 치고 정권을 잡았는데, 오왕과 여러 측근이 그 성취를 못 이겨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전쟁 중에 겪은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과도한 방식으로 복수를 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손무는 ‘태산을 쌓아 올리다가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서 실패한다는 옛글이 있다’며 원통해했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혹은 운이 너무 좋아서 성공을 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그릇이 되지 않는다면, 다 소용이 없다. 물론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그만큼의 성취까지도 가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그릇이 되는 사람일까? 그동안 나는 내가 가진 자원이 부족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환경이 어렵다… 등등 여러 가지 탓을 하면서도, 나 자신의 그릇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사람의 그릇이 커지기 위해서는 온몸을 부수는 고통을 견디며 한계를 넘어야 하는데, 나는 아픈 것을 최대한 겪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다행인 것은,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릇이 깨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출산의 고통과 육아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그릇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좋아하는 것을 차례로 손에서 놓고,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고, 나의 욕구보다는 아이의 욕구를 먼저 해결해 주고, 더러운 것을 내 손으로 다 처리하면서, 나 자신으로부터 탈피를 하게 된다. 이 모든 활동이 그릇을 키우는데 좋은 경험이 되어 준다. 부작용은 이런 과정에서 정신줄을 놓고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인데,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을 잘 추스르면, 그릇이 넓어지게 된다.


이만한 도량 훈련을 했으면, 무언가를 해도 괜찮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능력 자체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이 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엄마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는 올라야겠지만, 티브이에서 나올 정도로 최고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못하고 움츠릴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은 정말 세상에 한 줌인 천재들이다. 그냥 밥벌이할 정도의 능력,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은 엄마에게 충분히 있으니 말이다. 그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엄마의 매력으로 세상을 휘감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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