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가족이라는 존재의 무게

무겁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아이러니

by 한들

나는 결혼이라는 걸 했다. 남편이 있고, 아이도 둘이 있다. 집안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숨에 차서 헉헉 거리면서 겨우겨우 이 일을 해 나가고 있다. 가끔은 이 모든 것에서 훌훌 벗어나고 싶다. 내가 결혼은 왜 해가지고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지, 연구에 몰입도 못하고 책도 읽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것인지,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왜 견뎌야 하는 것인지…


힘이 들 때면 푸념하고 걱정하고 짜증내고 한탄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도 한다. 결혼을 해서 일가를 이루는 일, 특히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은 장난이 아니다. 한 번 시작되면 돌아 킬 수도 없는 아주 무서운 결정이 결혼, 출산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바로 삶을 지그시 짓누르는 그 고통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도 안다. 실제로 아이를 임신했을 때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해내었다. 아주 오랫동안 나를 짓눌렀던 중요한 프로젝트는 박사논문이었다. 박사 과정을 다 마치고 났을 때가 스물여덟 살이었다. 논문을 빨리 쓴다면 서른 전에도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때부터 엄청난 불안감이 몰려와서 논문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사춘기에도 안 했던 방황을 이 시기에 몰아서 했다.


이 불안감과 걱정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반복해서 말했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하나, 이대로 백수가 되고 마나,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을까… 이런 생각에 휩싸여서 졸업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그때부터 유학을 가겠다고 영어공부를 시작했는데, 외국으로 가려니 더 큰 불안감의 파도가 몰려왔다.


과연 내가 시험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외국어로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외국에 나가서 굶어 죽으면 어떻게 하지, 타국 땅에서 객사하면 누가 나를 챙겨줄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만 축냈다. 그 시간에 단어 하나, 토플 문제 하나 더 풀고, 알바라도 하나 더 뛰어서 돈을 모아 놓으면 될 일이었는데 말이다(이건 왠지 엄마들의 잔소리 레퍼토리인 듯? 그 당시엔 아주 심각하게 힘들었었는데, 아줌마가 되고 나니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졸업도 안 하고, 유학 준비도 잘 되지 않는 상태로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니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결혼하는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돌렸다. 이것도 누군가에게는 사치로 보일 수 있겠다. 방향을 돌리다고 해서 결혼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유학은 혼자 가도,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결혼을 후루룩 하고, 아이도 가졌다. 결혼을 했으니 유학은 포기, 졸업 논문을 쓰고 아이를 가지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 없는 일 년 동안 강의 다니고 프로젝트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논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임신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의자에 앉아서 꾸준히 졸업논문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들썩들썩한 엉덩이를 눌러앉게 해주는 강력한 누름돌이 되어 주었다.


몸이 무거우니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게 됐다. 그러니 주로 집에만 머물렀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 보내면, 바로 일어나서 노트북 켜고 작업 시작. 답답하기도 하고 아이를 위해 운동을 해 줘야 하니까, 점심 먹고는 근처에 있던 대학 캠퍼스를 돌면서 산책을 했다. 그런 후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그렇게 오후가 모두 지나면 집에 와서 저녁 준비하고 쉬거나 남편과 놀고 잠. 다시 아침.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반복, 반복, 반복. 아주 지겹고 지루한 일상이 이어졌다. 동시에 이러한 반복된 일상은 굉장한 안정감을 주었다. 조금씩 연구가 진전되었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고, 육아를 하는 과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게 규칙적으로 움직이는지 모르겠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깨고, 울고, 자고, 먹고… 반복 반복 반복. 그렇게 아이는 자랐다. 둘째가 생겼고, 여전히 나의 삶은 반복 반복 반복. 둘째가 생기고 나서도 논문 하나를 써냈다. 역시나 몸이 무거워지니까 눌러앉아서 매일 논문 읽고 썼더니, 자연스레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과 일과 관계가 재편되고, 일상은 단조롭고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지 않게 되고,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이것저것 하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높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 하나가 움직이려면, 온 가족이 총출동해야 하니 말이다. 당장에 닥친 아이와 관련한 일을 처리하는데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또한 잦아들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정신을 집중하고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되었다.


가족이 생기면서 중심이 생기고 삶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웬만한 헌신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엄마의 온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 아이가 자란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소유할 수 없고 그들의 세상으로 고스란히 보내주어야 한다. 정말로 밑지는 장사다. 하지만 이 보다 가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 준다. 보너스로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 때때로 흐뭇하고, 아이가 보는 그림책이나 만화를 보면서 힐링하고, 아이 교구 챙겨주면서 되려 내가 두뇌계발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서 정작 내가 크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헌신과 고생, 그 무게감이야말로 나를 생으로 밀어내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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