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주 Jul 25. 2022

1-1. 딩크임박

지옥문 끝에는 천국이 있을 줄 알았는데. 지옥문 끝에는 그냥 지옥이 있는 건가?


큰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딩크가 되게 생겼다. 

우리나라 의학을 믿고, 나의 운과 노력을 믿고, 신을 믿으며 호기롭게 시작한 난임시술이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예전에 뉴스에 나온 늦어지는 결혼으로 난임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아이고 우리나라 큰일이네" 하고 흘렸었는데 우리나라는 둘째치고 내가 큰일나게 생겼다. 만혼으로 인한 난임이 내 일이 될 줄이야. 남들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꿈꾸지만 평범한 일상을 이루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40대 초반의 나.

시간이 없다.   

사람들은 아직 괜찮다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 

40대 중반에도 애를 낳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건 드문 경우이기 때문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다. 

30대 중반에도 애를 낳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잖아? 너무 당연한 거니까. 근데 40대 중반에 아이를 낳는건 드물고 특별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놀라운 얘기를 구전으로 전하는 것이다.

40대 초반이 된 나는 시간이 정말 없는 것이다. 


왜 그동안 나는 시간을 허투루 썼던가!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후회한다.

싱싱하고 건강했던 20대의 그 많은 난자들을 왜 흘려보냈던가!

시간을 돌아가 20대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무조건 난자를 얼리라고 조언하고 싶다. 


지금당장! 최대한 많이! 무조건 얼려!

(개인적으로는 30대도 늦다고 봅니다. 건강을 타고난 사람들이야 몇살에 하든 상관없겠지만 저처럼 비리한 애들은 30대부터 건강이 꺾이거든요. 어차피 할거면 빨리하는게 좋다고 봅니다.)


그치만 20대의 나든 30대의 나든 그딴 소리 안 듣겠지. 난 나를 알아. 남의 말 절대 안들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내 말 안듣겠지. 이유는 다양하다. 

"전 결혼 일찍 할건데요? "

"전 생리주기도 일정하고 생리통도 없어요."

아니 이유도 필요없다. 이런 얘기를 한다면 젊은 처자들의 반응은 "굳이...?" 또는 "왜?"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혼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더라. 내 계획이 일찍 결혼하기 였어도 인연이 늦게 나타나면 결혼도 늦어진다. 생리통도 없어 생리주기도 규칙적인게 곧 난소와 자궁이 건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혼 후 받은 산부인과 검진에서 양쪽 난소에 혹이 하나씩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난소 이새끼 차라리 티라도 내지 그랬어!(혹이 있으면 난소의 기능이 저하된다고 합니다) 

사실 결혼 적령기에 맞게 결혼하거나 자궁, 난소쪽이 튼튼한 분들은 난자냉동같은 거 필요없다. 난자냉동이 말이 쉽지 그 과정은 쉽다고는 할 수 없다. 돈도 돈이고 난자냉동이라는 게 주사 한 번 맞고 끝나는게 아니라 과정이 꽤나 길어서 심적, 육체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미래는 알 수 없고 난소, 자궁건강도 장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 저 아줌마 왠 미친 소리야 들을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누구든 지나가는 처자들 붙잡고 난자냉동하라고 외치고 싶다. 


    

요즘 종종 보는 티비 프로그램이 있다. 고등학생 때 부모가 된 아이들의 삶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10대 아이들이 출산 후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사회적 기반이 잡히지도 않은 체 육아를 해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아이고 어쩌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꼭 맨 마지막는 "그래도 부럽다" 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온다. 그들이 한창 이쁘고, 젊고, 뭐든지 배울 수 있는 나이에 육아와 생활비를 위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안타깝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내가 그들보다 여유가 있는 것은 맞지만 단 하나 내가 갖지 못한 걸 그들은 가졌으니까. 난 그들을 짠해 하다가 결국엔 내가 짠해진다. 그러니 누가 누굴 짠해할 필요는 없다. 



사실 이 프로그램 외에도 어떤 TV프로그램을 뭘 봐도 기승전임신이다. 이건 거의 병적이기도 한데 이 병의 치료방법은 임신밖에 없다.(이것봐요 또 기승전임신이지요) 그러나 아까도 말했지만 시간이 없다. 기회도 많지 않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길어보이지만 막상 따져보면 기회는 12번뿐이다. 1년에 고작 12번이라니니 벌써부터 초조하지만 초조하면 안된다. 스트레스가 제일 안 좋다고 한다. 근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지? 어느날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올라간 나에게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물론 여러개 있으면 좋겠지만   딱 하나면 되요. 난자 딱 하나로 수정란 만들어서 딱 한 번만 성공하면 되는 거에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 말은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 그 딱 하나만 있으면 돼. 계속 실패해도 딱 한 번만 성공하면 돼. 그 딱 한 번을 위해 난 이제 질주하는 경주마가 되어 앞만 보고 달리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달려왔지만 이제부터는 몸에 무리가 가니 어쩌니 이런거 1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고!다.


그렇게 나의 최후의 도전은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1-0. 비자발적 딩크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