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 인기도서로 명성이 높던 여행기가 있었다. 사실 이런 책을 즐기는 편은 아닌지라 워낙 건성으로 읽었었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나 생각나는 것은 인도에서 겪었던 경험이 작가에겐 퍽 낭만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낭만은 사람들에게 전염되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읽고 인도 여행을 결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자면. 다만 결과는 같지 않았나 보다. 낭만적인 인도를 마주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인도를 마주하고 툴툴대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보면 인도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나눠주는 서천극락은 아니었다.
문학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인도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꽤 일관적이다. 중국의 고전문학인 서유기에서는 중생을 구도할 경전이 있는 부처님들의 거처로 등장하고, 서머싯 몸의 <면도날>에서는 인도를 수많은 진리 탐구자들의 땅이자 한 미국인 청년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장소로 등장한다. 거기다가 앞서 이야기한 여행기는 어떤가? 고대, 근대, 현대까지도 인도의 신화는 공고한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인도에 가서 얻기는커녕 잃기까지 하고 오는 사람들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설마 인도의 신비스러운 문이 열리지 않을 만큼 타락한 영혼들이란 말인가? 간혹 해외토픽으로 다뤄지는 인도의 범죄를 보면 타 현대사회에 견주었을 때 만만치 않게 타락한 것 같으니 여행자 탓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대체 구원에 대해서 궁금해질 따름이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내린 것은 충격과 구원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나 자신을 생경한 장소에 던져놓음으로써 찾아오는 그 충격. 그것은 얼핏 보기에는 나를 한 단계 끌어 올려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가고 익숙해진다면 충격은 허깨비처럼 사라진다. 그렇기에 처음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열악한 인프라, 입에 맞지 않는 음식, 풍토병 등등. 석가모니께서도 이런 충격을 쫓으시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깨달음을 찾은 곳은 그저 보리수나무 아래였다. 요컨대 인도까지 찾아가서 얻는 구원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 얼마나 준비되었는지에 따라 다르다는 소리다.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면 굳이 그 먼 곳까지 갈 필요 없이 집 앞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면서도 찾아올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준비 없이 간다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오는 헛걸음이 되리라. 이쯤 생각하니 벌써 하나 구원을 얻은 것 같았다. 적어도 인도에 가지 않을 이유 하나를 만들었으니 내 지갑은 구원받은 것이다. 생각만으로 깨우치게 하다니 역시 인도란 깨달음의 고장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