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을 모른다고?

by 서론

얼마 전 사흘을 4일로 알고 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나 실시간 검색어에 사흘이 올라왔다는 말을 들으니 다른 사람들에겐 퍽 충격적인 일이었나 보다. 지금 세대는 잘 모르지만, 과거 우리나라에는 날짜를 세는 단위가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까지. 이들이 생소해진 까닭은 날짜의 기준이 달이기 때문이다. 음력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던 시기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현상을 보니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회가 집단에서 개인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나타난 일이라고. 과거를 지배하던 시간과 공간의 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시간은 세로축을, 공간은 가로축을 담당했다. 시간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농경 사회엔 하늘의 해와 별의 운행에서, 산업 사회에는 많은 노동자가 쉽게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있는 시계로 쏠렸다. 그러나 현대에는 그런 벽걸이 시계보다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고개를 숙이고 보는 일이 잦아졌다.


공간은 어떨까? 오래전 농경 사회에서는 공간은 공유가 가장 큰 화두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같은 공간을 나누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함께 대응하는지가 중요했다는 소리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것이 동양에서는 음력이 계절의 변화와 유리되는 불완전성 때문에 절기를 만들었다. 농경 사회에서 절기는 곧 생명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선 그런 절기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 더위가 찾아오면 에어컨 아래로 가면 될 일이고 겨울이면 나무를 해올 일 없이 도시가스로 난방을 하면 된다. 점점 공간은 거대한 공유지에서 개인 중심으로 변화한다. 남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에서도 사람들은 SNS에 자신만의 공간을 찍기에 바빠졌다.

변화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고 결국 단어, 기준의 생명력이 다 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는 곧 자연의 섭리이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혹자들은 이런 개인 중심적 현상에 대해서 안 좋게 평가하기도 한다. 뭐, 그럴 수 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도록 진화한 동물인데 이런 결속이 깨어지는 것은 종족 전체에 파국을 몰고 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평소에 공간을 나누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기억의 중심지가 될만한 장소로 사람들은 모여들고 공유한다. 더는 공간과 시간은 화두가 아니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기억으로 묶어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장소에 가면 그곳을 찍어 올리고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은 댓글을 달며 장소에 대한 기억을 나눈다는 말이다. 이제는 기억이 시공간을, 그리고 의식을 지배하는 시대이다. 그러니 사흘을 모른다는 것쯤이야. 너그러이 여겨주자.

작가의 이전글인도 여행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