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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 Eunjeong Jul 03. 2021

엄마의 체벌

어릴 때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합리적이고 멋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엄마만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엄마는 모든 일에 관대했지만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엄하게 화를 냈다. 

엄마는 잘못한 것이 있을 때는 종아리를 때렸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이 거의 없다. 

단지, 그에 대해 할아버지와 엄마가 크게 싸운 기억은 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다 같이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자식은 절대 때려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부모라도 자식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래서 잘못한 것이 있다면 종아리를 맞아야 한다는 엄마와 할아버지는 가끔 다른 교육관으로 싸우기도 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할아버지와 엄마의 싸움은 의외로 따뜻했던 것 같다. 

정말 둘이 치열하게 논쟁을 했던 것 같은데, 그럴 때면 할머니와 아빠, 나 그리고 동생은 마당에 나와 논쟁이 끝날 때까지 멍하니 있던 것 같다. 


나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엄마를 보면서 그 싸움이 왜 따뜻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어릴 때 아빠가 돌아가신 엄마에게 할아버지는 시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였고, 할아버지에게 엄마는 며느리가 아닌 딸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치열하게 언쟁할 수 있었고 그렇게 싸우고도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마당에 피난을 나간 우리도 그 시끄러운 언쟁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두 사람의 언쟁의 주제였던 우리의 체벌을 나는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 어려서 그런 줄 알았는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니 실제로 종아리를 별로 안 맞아서 그런 듯하다. 


엄마는 우리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처음에는 무조건 용서를 해준다. 두 번째는 왜 같은 잘못을 했는지, 종아리를 몇 대 맞을 것인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엄마를 설득해야 했다. 


물론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난 후 엄마는 스스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너무 어린 나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다. 



어릴 때 가족들과 밥을 먹다 무슨 일이었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동생을 혼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방으로 회초리를 들고 따라오라며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동생에게 뭘 잘못했는지, 왜 그랬는지, 그래서 몇 대를 맞을 것인지 물었다. 

자식은 역시 부모를 그대로 따라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회초리도 어느 순간 집안에서 사라졌다. 

엄마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희는 스스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엄마랑 대화가 가능한 나이가 되었으니까 엄마는 매를 들지 않을 거야'

그 이후로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났다는 말 대신 엄마랑 싸웠다는 표현을 썼던 것 같다.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 엄마는 엄마의 생각을 말했고 나는 내 입장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엄마가 옳다고 생각이 되면 나는 엄마의 의견을 존중했고 내 말이 맞다고 생각이 될 때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따뜻했지만 무서웠고, 무서웠지만 사랑이 넘쳤다. 

그리고 여전히 무서운 우리 엄마는 여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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