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 Eunjeong Jun 16. 2021

엄마의 사과

우리 엄마는 20살에 아빠와 결혼을 해서 21살에 첫째 딸인 나를 낳았다. 

엄마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엄마의 성격 덕분인지 우리는 친구 같은 모녀 사이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엄마가 갑자기 아주 어릴 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4살? 5살 때쯤 겨울에 없어져서 하루 종일 나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몇 시간을 애가 타서 찾아다니는데 동네 꼬마가 내가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는 말을 해줘서 운동장으로 달려갔는데 혼자 신이 나서 추운지도 모르고 땅바닥에 앉아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너무 화가 나서 내가 입고 있던 잠바를 잡아서 일으켜 세웠는데 잠바가 벗겨지고 엄마는 내 등짝을 몇 대 때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너무 어려서 그랬어

'그때는 하루 종일 걱정하고 너를 찾아다닌 생각에 내 감정만 중요해서 그 작은 애 등짝을 때렸어. 지금 생각해 보면 너도 놀랬을 텐데... 안아줄 걸. 그때는 나도 너무 어려서... 지금이었으면 안 그랬을 텐데'라며 웃는다. 


엄마의 말에 나는 머쓱하고 쑥스러워 '아~뭐 기억도 안 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라고 말했다. 


엄마의 사과

엄마의 말에 '미안하다'라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안다. 

나는 기억도 못하는 그 순간을 엄마는 30년이 넘게 계속 미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말속의 모든 단어들은 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그때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그때 때려서 미안해' '엄마가 엄마 감정만 내세워서 미안해'였다. 


알면서도 낯 간지러운 것은 죽어도 못 참는 무심한 딸은 별 이야기를 다 한다며 엄마를 타박하며 화제를 돌려 버렸다. 

언젠가 나도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말해 줄 수 있으려나...


괜찮아.
나 기억도 안나. 
그냥 늘 내편이 되어주던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행복했던 기억만 나.
그러니까 괜찮아, 엄마


작가의 이전글 실패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내 꿈의 시작일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