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을 시작한 이후, 학생들에게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없을까 생각하다 한 학기에 2~3번 개별 강의를 짧게 해 준다. 물론 강제는 아니다.
오늘 기말고사 전에 개별 강의를 신청한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수업 초반에 나눈 이야기가 떠올라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학생은 누군가 물어봐 주길 바랐던 것처럼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너무 생각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꿈 하나만 보고 왔는데 이제 대학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이 시점에 코로나로 채용공고가 나오지 않는단다.
열 몇 살쯤 더 먹었는데... 그래도 그 학생보다 조금은 더 오래 살았는데 해 줄 말이 없었다. 정답도 알 수가 없었다.
타인의 걱정을 내가 측정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학생에게 살아보니 그건 별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살다 보면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위로가 되는 말이 있기나 할까?
살면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나는 그냥 그냥 내 이야기를 했다. 24살에 일본에서 졸업을 하고 취업이 거의 확정이라고 생각했다. 지원자 중에 최소 조건을 충족한 사람이 나 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계획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억울했다. 하지만 억울함 이전에 너무 큰 문제가 생겼다. 학생비자가 곧 끝나고 취업이 되지 않았으니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에게 일본 생활을 정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학기가 한국과 한 달 차이가 나서 편입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1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보냈다.
20대의 나는 플랜 B는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내 일에 확신과 자신이 없어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보낸 후 깨달았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늘 플랜 B, C가 필요한 것이구나!
실패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내 꿈의 시작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그래도 4년제는 갈 줄 알았는데 나는 전문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보통 전문대는 고등학교 때부터 실업계에서 그 전공을 공부한 친구들이 비슷한 내용을 이어서 공부할 수 있는 과들이 많았다. 인문계를 나온 나는 그 과가 무엇을 하는지도 몰라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아는 전공이라고는 관광일어학과와 관광영어학과였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으니 그럼 일어로 가자라고 선택한 것이 나의 대학생활의 시작이었다. 지옥 같은 6개월이었다. 나에 대한 실망과 낯선 환경. 엄마와 싸우고 가출을 해서 고모집으로 갔다. 가출을 하면서도 학교에 갈 수 있는 준비는 다 해서 나왔다. 생각해보면 학교는 안 갈 수가 없었다. 학교가 너무 재미있었다. 일본어가 너무 좋았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실패했고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4년제에 갈 점수가 나왔다면 나는 일본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의 결과물이었던 일본어가 지금 나를 먹여 살려주고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인생의 어느 한순간도 감히 성공과 실패로 판정할 수 없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싶어 힘들었던 그 순간이 지나고 보면 나에게 이렇게 좋을 일이 있으려고 그런 일이 있었나 보네 싶은 일이 누구에게나 한 번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대학입시 실패가 그랬다.
내 이야기와 함께 그 학생이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무엇이었을지 대화를 나눈 후 나는 말했다.
'정말 너무 미안하지만 청춘은 원래 아파요. 어른들도 똑같이 아픈데 경험이 쌓이니까 이제 아는 거지. 이 아픔이 며칠 간지, 몇 달을 갈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래서 조금 덜 놀라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20대는 처음 겪는 일이 너무 많아서 아직 면역이 없잖아요. 그런데 그걸 내가 어른이랍시고 아픈 게 아니다, 다 지나가 한다고 아픈 것이 어떻게 안 아프겠어요. 내가 정답을 줄 수는 없어요. 내 인생이 아니니까. 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좌절이 세상이 주는 또 다른 기회이고 시작일 수도 있어요. 더 많이 고민해 보고 그리고 또 말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결국 나도 정답은 모른다. 하지만 학생들이 나에게 듣고 싶은 건 자신의 인생의 정답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정답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나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들어주고 절대 불변의 법칙을 들려줄 뿐이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