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에게 일본어를 배우던 분이 가끔 자녀에 대한 고민을 말하셨다.
자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계셨고 믿어주고 계셨는데 그래도 더 이해하고 지지해 주고 싶으신 마음이 느껴졌다.
남들 눈에는 예민하고 약해 보이는 성향을 가진 그 아이는 생각이 많아 행동이 늘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분께서 자신의 아이를 한 번 만나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셨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 했고, 아이를 만나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에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노력하는 아이였고 책도 많이 보는 아이였다.
그 아이처럼 어른들 눈에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아이들 역시 그들 안에서는 저 질문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답을 찾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물었다.
'뭐가 되고 싶어?'
아이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응. 아직은 뭐가 되고 싶은지 잘 모를 수도 있고, 지금 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바뀔 수도 있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아주아주 나이가 많이 먹어서 선생님만큼 어른이 돼서 찾게 될 수도 있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배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해. 그것들을 배우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지금 쌓아놓으면 좋지 않을까? 나는 그게 공부인 것 같은데....
1등을 하고 백점을 맞는 것만 공부라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 아이는 나와 많이 닮았다.
책을 좋아하고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학교 공부보다 읽고 싶은 책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아이였다. 나 역시 고등학교 3학년 쉬는 시간에 소설책을 읽다 맞아본 적이 있을 만큼(소설은 대학 가서 읽고 지금은 입시공부를 하라며 혼났다) 학교 공부보다는 책을 더 좋아했다. 다행히도 그 아이의 부모님도 나의 부모님도 그런 성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시는 분들이었다.
나는 대학에서도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수업한다.
내 수업에는 자주 이미 일본어를 잘하면서 쉽게 A+를 받기 위해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 학생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첫 시간에 아주 강하게 말한다.
'정말 다양한 분야를 마음껏 선택해서 배울 수 있는 곳은 대학밖에 없어요. 등록금이라는 비싼 돈을 내고 듣는데 성적 잘 받을 수 있는 과목 말고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하세요. 제 수업은 일본어 교양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입문자를 위한 내용을 가르칩니다. 일본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제 수업에서 나가주세요. 제발 본인의 시간과 비용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공부(工夫)는 일본어로 '생각하다, 노력하다, 아이디어, 연구' 등의 의미로 쓰인다. 우리가 말하는 '공부'라는 말을 하려면 '勉強'라고 하는데 이 한자의 한국어 뜻은 '억지로 하거나 시킴'이라는 뜻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단어다.
사람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 그냥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며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각성시키고 성장하게 한다면 그게 공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