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체국을 갈 일이 있었다.
택배 상자에 주소를 적어 붙이려고 하는데 포장 테이블에 당황스러워하며 상자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에게 멀리 업무창구에 앉아 있는 한 직원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상자를 어떻게 하고 주소를 어떻게 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으신지 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계셨다.
나는 내 업무를 먼저 보고 할아버지께 다가가 말을 했다.
'제가 조금 도와드릴까요?'
할아버지께서는 병원에서 약을 받았는데 잘못 와서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너무 정중하고 젠틀하시게 본인이 나이가 많아 서투르다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괜찮다고 말하면 되지만 화가 많은 나는 직원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괜찮아요. 직원이 너무 불친절하더라고요. 제건 다 했으니깐 제가 해드릴게요'
그러자, 업무 창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큰소리로 말하던 직원이 나와 나에게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나는 '아니요, 저 말고 할아버지한테 사과하셔야죠. 본인들에게는 익숙한 업무가 어렵지 않은 일 같지만 가끔 오는 사람한테는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사람을 대하는 업무가 힘들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몰상식한 고객에게까지 친절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켜본 내 눈에 그 할아버지는 정중하셨다. 그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어려워하셨을 뿐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쉬운 일이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익숙해지지 않는 어려운 일이 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수업을 했고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양 일본어! 일본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 학기 2반을 가르치고 있다.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고민 하면서 수업을 하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매 학기 같은 내용을 가르친다. 1년에 같은 수업을 4번 정도 하는 셈이다.
같은 내용을 하루 두 번 몇 시간씩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같은 질문도 수없이 한다. 하지만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늘 다르고, 그들의 반응이 늘 다르다.
나는 내 말이 아닌 상대에게 집중한다
그러면 매 학기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지루함보다는 새로운 것을 깨달아가는 학생들을 통해 새로운 수업을 하는 것과 같은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매 학기 학생들에게 말한다.
'시험시간, 과제 설명은 최대한 집중해서 들어주길 바라고, 공지사항을 한 번 확인하고 질문해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일본어에 대해서는 했던 질문을 얼마든지 다시 여러 번 해도 괜찮아요. 처음 배우는데 한 번에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해요. 계속 물어보세요. 몇 번이든 설명해 드릴게요'
이 말은 어쩌면 나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닐지 모른다. 나의 스승에게 그렇게 배웠고 그대로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열 번을 똑같은 톤으로 똑같은 속도로 말해주시던 교수님
대학교에서 처음 일본어를 배우고 2학년이 되자 한 교수님께서 앞으로 수업시간에는 일본어만 사용하라고 하셨다. 자신에게 일본어로 말하지 않으면 절대 답을 해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대신 우리가 알아들을 때까지 여러 번 말해 주시겠다고...
겨우 1년, 그것도 대학에서 1년은 개월로 계산하면 8개월 정도이다. 8개월 동안 배운 일본어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상대의 대답을 이해하는 것은 더 쉽지 않다.
하지만 교수님은 정말로 수업시간에 단 한 마디도 한국어를 하지 않으셨다. 대신, 학생들이 원할 때는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이고 같은 톤으로 더 쉬운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우리에게 일본어로 말해주셨다.
살면서 참 많은 불친절함에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도 사람이라고... 힘들다고...
매일매일 같은 말을,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하지만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대부분 처음 만나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그 일을 처음 해 보는 사람들일 것이다.
무례하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노해야 하지만, 익숙한 일을 하는 당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며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할 때는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다.
고객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처음이니까...
누구에게나 익숙하지 않은 일은 분명 있으니까...
당신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