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 준비를 할 때는 업무가 아닌 이상 외출을 하지 않는다.
집안에서도 쉴 때도 책상에서 쉬고 잠깐 딴짓을 해도 책상에서 한다.
(지금도 마음은 급하나 잠시 머리를 식히는 중^^)
월요일 통역을 앞두고 최대한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버이날이기도 하고 갑자기 들어온 통역 건이라
그전에 부모님과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리도 집에 오는 길에 바람에 차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안돼! 죽더라도 통역 끝나고 죽어야 해!'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그 순간 나의 진심이었다.
그리고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출장이 많았던 시기.
새로운 사업을 하는 회사와 함께 일한 덕에 계약서 번역도 많았고 계약을 위한 중요한 미팅도 많았다.
아침 첫 비행기로 출장을 떠나고 1박 2일, 또는 2박 3일 일정을 마치고는 마지막 비행기로 한국에 와서 짐만 챙겨 다음 날 아침 첫 비행기로 또 출장을 다녔다.
그날도 역시 일본에서 마지막 비행기로 귀국해 다음 날 첫 비행기로 중국에 가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일본 마지막 일정이 식사를 하면서 미팅을 하는 자리였다. 식사메뉴는 일본에서 유명한 식당의 장어덮밥.
나는 구운 생선을 잘 먹지 못하고 그중에서도 장어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역사가 밥을 먹지 않으면 클라이언트는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제가 말이 많아서 식사를 못하셨죠?' 라며... 그래서 나는 통역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밥을 먹는다.
그런데 나는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할 때는 최대한 씹지 않고 삼키는 버릇이 있는데 통역까지 하고 있으니 장어를 한 점 씹다 말고 꿀꺽 삼켜버렸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장어의 가시가 목구멍에 박힌 것이다. 아닌 박힌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보험도 되지 않는 일본 병원을 찾아갔지만 점심시간이기도 했고 예약하지 않은 환자를 봐주는 병원이 없었다.
그렇게 통증을 참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갔다. 가는 동안에도 통증이 계속되었고 목이 붓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11시가 한참 넘은 시간에 한국에 도착해 나는 바로 가장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런데 공항 바로 옆 병원은 진료를 하지 않았고 그다음 병원은 목 안을 볼 수 있는 장비가 없다며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이대목동병원까지 갔다. 응급실의 특성상 나는 응급환자 축에 끼지도 못하기 때문에 조용히 앉아서 기다렸다.
TV에서 간혹 보았던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해 주셨다.(진료를 받을 때는 그분인지 몰랐다)
전쟁터 같던 응급실에서 얼마나 친절하고 자상하게 또 나의 고통을 너무 이해한다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시는지 눈물이 났다. 그런데 가시는 육안으로 찾지 못했다.
장어 가시는 너무 얇아서 육안으로 찾기 어려울 수 있다면 장비를 이용해 더 자세히 보고 그래도 찾지 못해 기다리는 동안 이번에는 다른 선생님이 설명을 해 주셨다.
더 정밀한 검사를 해야 하는데 몸에 천공이 있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천공이 있는지부터 확인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분명 굉장히 전문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으나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이미 새벽 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다음 날 비행기를 타려면 7시까지 김포공항에 가야 한다. 나는 지금 집에 가도 3시간도 잘 수 없는데 이렇게 계속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저 내일 중국에 꼭 가야 해요. 내일 계약 중요한 계약을 하는 날인데 저 없으면 계약 못해요. 그냥 가시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가시가 박힌 것이 아니라 긁고 지난 것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오전에 온 환자가 본인은 가시를 삼켰다고 말했으나 검사를 해보니 철수세미 가루였다며 그런 경우일 수도 있어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병원을 나가야 한다면 죽어도 병원에 책임이 없다는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겠어 싶은 마음과 함께 정말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야 했고, 결국 나는 다음 날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통역사 한 명이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나를 대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통역사란 그런 직업인 것 같다. 우린 공기처럼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가장 훌륭하게 일을 끝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역사는 통역을 망치거나 통역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 그 존재감이 가장 커진다.
그리고 우리가 맡는 분야는 늘 새롭고 우리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며칠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한다.
내가 아프다고 그 자리를 아무런 준비 없이 선뜻 채워줄 사람은 많지 않다. 동료의식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동료의 자리에 섰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역을 앞둔 통역사는 혹여나 아플까 다칠까 나를 애지중지한다.
나 대신이 없기 때문에...
또~ 통역 준비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