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 Eunjeong Apr 27. 2021

타인의 고통이 위로가 되는 이유

대학원을 다니면서 대부분의 동기들이  번쯤은 우울, 좌절, 자괴감 등등의 감정을 아주 오랜 기간 갖게 된다. 살면서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타인에게 가장 많이 인정받으며 살았던 외국어 실력. 수많은 세월 받아온 인정과 칭찬을 거름 삼아 통역사의 길을 꿈꾸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학원에 들어오는 순간, 아니 어쩌면 대학원 준비하면서부터 매일, 매 순간 외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어 실력까지 철저하게 평가받으며 늘 무엇이 잘못되었지 듣다 보면 나를 공격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나도 1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우울증 비슷한 감정을 겪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지만 통대생의 여름방학은 휴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업에 할애하던 시간을 스터디에 개인 공부에 쓰면서 학기 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때 나는 어떤 흉측한 모습을 보여도 창피하지 않은 이 세상 유일한 사람, 엄마에게 나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도 울고, 나를 위로하는 엄마에게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짜증을 내고 세상 끝난 것 같은 얼굴을 오로지 엄마에게만 보여주며 나의 아픔을 엄마에게 강제로 공유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다. 나 혼자 잘 겪어내야 더 클 수 있는 성장통이라는 걸. 그래서 엄마는 내 뒤에 항상 엄마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늘 짜증내고 우는 나를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지켜봐 주었다. 엄마의 눈에 나는 안쓰럽고 불쌍한 딸이 아닌 이제 곧 멋지게 성장할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믿음이 담겨있었다. (우울함을 극복한 건 엄마 덕분은 아니지만 내가 대학원을 잘 졸업할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믿음 덕분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 의외의 말 한마디에 우울한 감정을 벗어 버렸다.


2학기 통역 첫 수업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제일 못하고 부족한 것 같다며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겠지만 괜찮아요. 졸업하고 일을 하다 보면 자신감은 저절로 펴져요. 여러분의 선배들도 그랬어요. 다 그래요’

모두가 그랬다는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타인의 고통과 아픔 자체가 위로는 아니었다.


이 길을 갔던,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있는 동기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구나. 내가 부족해서 내가 못나서 이런 이상한 감정들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는 때로는 아니, 어쩌면 꽤나 자주 많이 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친구들과 시험지 정답을 맞춰 보며 그게 틀린 답인줄도 모르고 그저 다들 같은 답을 적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듯이...


그리고 교수님의 그 말씀이 위로가 되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선배들처럼 우리도 졸업하면 자신감을 회복할 것이라는 교수님의 예언이었다.


나는 성공한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그 일이 나에게 정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저 한동안 그 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 선배의 길이 나에게는 예외일지도 모르지만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나의 미래의 운을 받아 든 것 같았다.



인생을 들여다보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대학원 시절 나는 유치하게도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롭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똑같이 좌절하고 우울했겠지만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잘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었다면 조금 더 의연하게 잘 견뎠을까...



대학원 그 시절 필요했던 그 마음이 어쩌면 지금 또 나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통역사의 밥그릇 싸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