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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 Eunjeong Apr 21. 2021

통역사의 밥그릇 싸움?

꽤 오래전부터 통역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본인을 통역사, 때로는 동시통역사라고 소개하고 방송에서도 그녀를 통역사로 인정하며 실제 통역보다는 통역사라는 직업 자체가 유용하게 활용되는 분야에서 그녀를 기용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통역과 관련이 없는 분야의 대중들에게도 비난을 받는 일이 있었다. 물론 그 일을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영어 MC를 보았던 행사에서 형편없는 실력으로 '통역사가 저 정도 실력밖에 되지 않느냐?'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본 라이브 커머스에서 그녀를 보게 되었다. 영어로 상품을 설명하는 그녀에게 영어 실력을 칭찬하는 글이 올라오자 그녀는 그런 칭찬하지 말아라, 또 악플이 달릴 거다라는 말을 했다. 


참담했다. 




통번역사는 국가가 공인하는 자격증이 없다. 자격증이 있진 않지만 본인을 동시통역사(정식 명칭은 국제회의통역사이다)로 소개할 수 있는 건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다만, 자격증이 없는 만큼 통역을 했고 번역을 한 적이 있다면,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면 누구나 자신을 통번역사라고 소개할 수 있다. 절대 사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업계에서 또는 통역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실력 없는 통역사를 가래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문통역사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거나 통대출신, 비통대출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통번역대학원 출신이 무조건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위해 노력한 시간, 2년 동안의 혹독한 훈련, 진급시험과 졸업시험의 압박(실제 진급시험과 졸업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는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업계에 나온 사람들의 시간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했을 때 화제가 되었던 통역사 샤론 최는 전문통역사(통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의 훌륭한 통역에 수많은 칭찬의 글이 달렸고 통역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입장에서 너무 슬픈 댓글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통역사들은 반성해야 한다". "전문통역사보다 낫네" 


그런 댓글에 많은 통역사들이 그녀의 통역을 평가하거나 전문통역사들도 그녀 못지않게 잘한다는 글 또는 영상들을 통해 말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은 통역사들이 그녀를 질투해서 저런 말을 한다고 했다. 

나는 영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샤론 최를 절대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어가 뛰어난 그녀가 자신의 분야인 영화에 대한 통역을 했고, 그녀는 분명 훌륭한 아웃풋을 보여줬을 것이다. 


 



샤론 최를 질투하는 것이 아니다


통역을 의뢰할 때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용'이다. 물론, 통역실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클라이언트는 통역사라면 실력은 당연히 갖춰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겨우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비용을 제시하며 통역사들을 경쟁시키기도 한다. 

특히, 대중들에게 노출이 많은 경우에는 '이력에 도움이 될 테니까'라는 말로 낮은 비용을 미안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태도인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대중들이 보는 통역사들은 사실 전문통역사가 아닌 경우가 꽤 많다. 


나는 오직 이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 많은 통역사들의 의견 역시 샤론 최에 대한 질투나 시기, 비난이 

아니라 통역 업계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그녀 역시 그런 맥락이다. 

가끔 주변에서 직업정신이 없는 통역사로 인해 낭패를 본 경험담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는 이런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통역사들 별거 아니던데. 우리 직원이 더 잘하겠더라' 


통역사, 전문통역사, 통대출신, 비통대출신. 


이른바 통대출신인 나의 밥그릇을 지키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글처럼 통대출신끼리 기득권을 지키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경로로 통번역사가 되었든 '알바'가 아니라 직업의식을 가지고 '통역사'로 일해 주길 바랄 뿐이다.  열심히 노력했고 노력하는, 통역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노력한 시간을 쉽게 훔쳐다 쓰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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