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알게 된 분이 메일을 주셨다.
'일본인 대상 한국어 수업을 의뢰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일본과 관련이 깊은 곳이기 때문에 이 일을 맡는다면 다른 일로 확장될 가능성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어를 가르쳐 본 적이 없다.
염치없게 몇 시간을 고민했다. 한국사람이니 당연히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나?
그 순간 한 장면이 떠올랐다.
통번역대학원 시절, 일본어 원어민 동기가 질문을 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이 받침 다음에 이 글자가 오면 이렇게 발음이 된다고 배웠는데 이 단어는 왜 아니죠?'
'음.... 미안. 그런 법칙은 잘 모르겠지만 이 단어는 법칙대로 발음되지 않는 게 맞아.'
나는 한국어 원어민이기 때문에 문법과 법칙보다는 몸으로 한국어를 익혔다. 일본어를 공부할 때 무조건 일본어 원어민이 잘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단계별로 원어민이 적합할 수도 문법을 통해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이 적합할 수도 있다고 가르친 내가 나에게만 예외를 적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나는 한국어를 가르쳐 본 경험이 없었다.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해서 한국어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곧 그분에게 메일을 보내 감사한 말씀이나 경험이 없어 나는 한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은 해 보았지만 일본인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 본 적은 없기 때문에 그 일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내가 일을 하면서 늘 잊지 않는 건 '돈값하는 사람이 되자'이다.
나에게 통역을 번역을 강의를 맡겨 준 사람의 돈과 시간을 헛되이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거절한 이번 일이 더 큰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가 그 수업을 했다면 타인의 시간과 돈을 헛되이 하고 실력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저 나를 믿어주고 일을 의뢰해 주신 그분의 마음에 감사하며 좋은 기억으로, 그리고 이 기회에 한국어 교육 공부를 해 볼까 하는 또 다른 나의 인생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