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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 Eunjeong Mar 03. 2021

통역도 체력이다.

'60,70이 넘은 대기업 총수의 스케줄은 가히 살인적이라 20,30대의 젊은 수행비서들도 나가떨어지고 오래 일하기 힘들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회사의 전담 통역으로 일 했을 때, 한 달에 보름 이상은 해외출장을 다녔다. 보름 동안 해외에 계속 있는 스케줄이라면 다행이지 싶을 정도로 보름 동안 한국과 일본, 중국 등등을 다녔다.


보통 스케줄이 첫 비행기로 일본(1박 2일), 마지막 비행기로 귀국, 다음 날 첫 비행기로 중국(2박 3일), 마지막 비행기로 귀국, 다음 날 첫 비행기로 일본(2박 3일).... 이런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면 본전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여기까지 오려고 사용한 비행기, 호텔 비용, 시간 등을 생각하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하나라도 더 보고, 먹고 하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이다. 


해외출장도 마찬가지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출장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최대한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성과를 내려고 노력한다. 출장자가 대표가 된다면 그 강도는 더욱 세진다. 


나는 대부분 대표님과 출장을 다녔고, 나의 스케줄은 6시 반 조식부터 시작하여 11시까지 미팅이 이어진다. 이동시간에는 통역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일본에서는 이동의 안내자 역할도 통역사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시 긴장상태이다. 


대표님과 호텔이 다른 출장인 경우, 호텔에 들어와서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번역이라도 있는 날에는 2~3시간 자기도 어렵다. 


그런 스케줄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일을 할 때는 피곤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통역을 할 때는 아무리 큰 고민이 있어도 잊어버릴 만큼 통역에 집중을 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조차 하기가 힘들다. 일을 하면서 '바쁘다, 힘들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 나의 성격 때문에 스스로 그런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나는 힘들지 않다고 살아도 몸은 자기 보호본능이 있는 건지 무리를 하면 몸이 꼭 비명을 지른다. 


그런 스케줄로 3개월을 버티다 결국에는 응급실을 여러 번 가고, 몸에 크고 작은 이상 징후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비행기를 타거나, 장시간 이동하는 경우에는 기절하듯이 잠을 자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했다. 


그런데 나보다도 더 강행군을 하고 계신, 나보다 20살은 차이가 나는 대표님은 늘 한결같은 컨디션으로 일을 하고 계셨다. 대표님은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하기 전부터 이런 스케줄로 살고 계셨고 나보다 해외출장이 더 많으셨으며 챙겨야 할 것도 나보다 수 십배는 많으셨다. 


그런데도 단 한 번도 컨디션 난조로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다만, 대표님은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시면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비축하시고 휴식을 취하셨다. 당연히 평상시에는 아프지 않기 위한 체중관리, 식단관리, 영양제 섭취 등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분들에게는 체력관리도 업무의 일부인 것이다. 


통역 일의 감사한 점은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신 분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뵐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님의 체력관리는 나에게도 큰 깨달음이 되었다. 


통역사는 스페어가 없다. 


통역사가 아플 것을 대비하여, 통역사가 지각할 것을 대비하여 다른 통역사를 대기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프리랜서 통역사는 아무 때나 아파서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에 조금이라도 아플 것 같으면 링거를 맞고 몸을 쉬어줄 수 있을 때 내 몸을 최대한 아낀다.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체력도 결국에는 실력이고 고객과의 약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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