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 Eunjeong Oct 29. 2021

시험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울었다.

포기가 어렵다면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았고 통번역대학원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전문대를 다니던 나에게 대학원에 지원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인 학사도 당장 가질 수 없는 조건이었다.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편입을 해야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도망가듯 졸업 후에 유학을 갔고 어찌어찌 편입을 했고 졸업을 했고 집에서는 대학원에 가길 원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실패가 두려워 어려운 길은 애써 피해 다녔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근근이 일본어 강사로 살던 어느 날, 문득 마음이 먹어졌다. 

대학원에 가야겠다! 배우고 싶다! 


대학원에 가겠다며 고등학교의 일본어 강사를 그만둘 때, 학교의 정규직 일본어 선생님은 자기 친구도 통대가겠다고 했지만 계속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의 꿈을 비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선생님의 친구처럼 통대 입시에 실패했다.  


통번역대학원의 입학시험은 1년에 한 번밖에 없다. 또한 한일과가 있는 통번역대학원은 많지 않은데 그중에 한국외대와 이화여대는 같은 날 시험을 보기 때문에 대부분 동시에 지원할 수가 없다. 나는 2번 입시에 실패했고 이렇게 나이만 먹어가는 현실이 두려워 또 도망을 갔다. 


일반 대학원의 일어일문학과 대학원에 지원했고 후기 입학을 했다. 하지만 통번역대학원에 대한 꿈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래! 한 학기 등록금은 내 꿈을 위해 버릴 수 있어. 이게 나에게 마지막 기회야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3번째 통번역대학원 입시시험을 보고 집에 오는 길, 

토요일 오후의 ITX는 자리를 미처 예매하지 못한 사람들이 통로에 서 있을 정도로 붐볐다. 나는 미리 예매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눈물이었다. 그냥 눈이 고장 난 것 같았다. 슬픈 생각이 들었던 것도 아니고,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아니고, 시험을 망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눈물도 아니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에서 그냥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정말 TV 드라마 주인공이 울면서 '나 왜 이러지?'라며 우는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우는지 이유를 모른 채 울었다. 나는 그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울었는지 지금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나는 정말 통번역대학원이 가고 싶었구나' 

'나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생겼구나'

  

결국 나는 마지막이라는 나와의 약속을 깨고 다음 해에 다시 통번역대학원 시험을 봤고 1년 치의 대학원 등록금을 날리면서도 기쁘게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TV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10년 동안 아이돌이 되려고 연습생 생활을 하고, 몇 년 동안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명으로 알바를 하며 가수, 배우의 꿈을 꾸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만큼 했는데도 안 되는 것이면 재능이 없는 것이라며, 그 길이 맞지 않는 것이라며 포기하라고 말한다. 아마 그들은 살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죽어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라면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그 순간이 도피가 아닌 과정인 사람이 분명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꿈을 꾸며 노력하는 그 과정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이미 행복한 인생이니까 그 보다 더 좋은 인생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