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들어가 처음 친해진 친구는 같은 아파트 옆 라인에 사는 아이였다. 그 친구와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와도 자연스럽게 친해져 그 무리에 섞여 1년을 친구로 지냈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특이한 아이였다. 흔히 요즘 말하는 일진은 아니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학교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유난스러운 아이였다.
친한 친구가 좋아하는 친구였고 같은 반이니 함께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학교 밖에서 따로 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1년을 잘 보내고 있던 1학년 학기 말에 그 아이는 함께 놀던 친구 중 한 명과 놀지 말라는 말을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까지 함께 놀던 친구를 왜 무시하고 없는 사람 취급해야 하는지... 그렇다고 그 아이와 특별히 친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옳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옳지 않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타깃은 나였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나를 향한 그 아이의 괴롭힘이 시작되었지만 곧 방학이었고 2학년이 시작된다. 2학년이 되면 다른 반이 될 수도 있으니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운명은 언제나 스펙터클 하다. 나는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학기가 시작된 첫날, 서로가 누구와 친하게 지낼까 탐색전도 끝나지 않은 그 순간에 그 아이는 내 자리로 와 한바탕 소리를 지르며 나를 몰아붙였다.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 아이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 아이는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 아이를 올려다보면 말했다.
다 했어? 다 했으면 가라
겨우 15살... 나는 속으로는 그 상황이 무섭고 불편했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내 속의 있는 용기를 쥐어 짜내 던진 말이었다는 것을 20년도 넘은 지금도 기억한다.
(중학교 2학 때 친해진 지금의 나의 절친은 그 당시의 일을 짤막한 감상평과 그림으로 그려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때 OOO보다 네가 더 무서운 애라고 생각했어'라고...)
하지만, 용기를 쥐어짜기 위해 15살의 어린 중학생은 속앓이를 하며 그 통증을 몸으로 겪어 냈다. 특별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늘 몸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서 조퇴하는 날이 많았다.
그날도 조퇴를 하겠다며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선생님은 택시를 불러주겠다며 책가방을 자기고 내려와 교무실에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가방을 들고 내려온 나에게 담임 선생님은 질문 하나를 하셨다.
'은정이는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야?'
나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순신 장군을 존경했다.ㅎㅎㅎㅎ 이순신 장군이라고 대답한 나에게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말하셨다.
'은정이가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지. 그런데 그렇게 위인전에도 나오는 훌륭한 사람도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관심 없는 사람도 있어. 그런데 평범한 우리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은정이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아'
앞뒤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이야기만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외가는 딸이 귀했기 때문에 늘 예쁨을 받았고 그래서인지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15살에 그 아이의 이유 없는 괴롭힘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내가 왜 아픈지, 내가 왜 힘든지 그 이유조차 몰랐던 나에게 선생님은 이유와 함께 해결책까지 한 번 주신 것이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의 존함은 '선녀'였다. 정말 나에게는 하늘에게 온 선녀 같은 분이었다.
그런데 사실 중학교 2학년 그 시간을 떠올리면 힘들었던 기억이 하나도 없다. 학교에서도 별로 건드리고 싶지 않은 유명한 그 아이가 나를 타깃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반의 친구들은 나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 2명은 중학교 2학년 때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한 명만 내 손을 잡아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에게 손 내밀어 준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내 곁에 있으니 그 아이를 두려워하던 아이들도 조금씩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 아이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마음이 아팠던 나는 수학여행도 한 번도 가지 못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자기는 단체 여행은 별로라며 나와 함께 수학여행 대신 학교에 등교해준 절친이 있다. 아프다며 조퇴를 하던 나에게 위로를 해 주던 선생님이 있다.
그래서 나의 그 시절은 아픔보다는 따뜻함으로 남아있다. 따뜻한 추억 덕분에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신념을 지키고,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냥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 딱 한 명이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