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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May 29. 2023

연극이 나의 미래가 될까

23.05.29.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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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조했다. <젤다의 전설 : 왕국의 눈물> 하느라 시간이 좀 부족했다. (다른 이유도 물론 많았지만) 대충 70% 정도를 끝냈고, 이제 좀 천천히 해도 될 거 같다. 스위치를 내려놓고 한 달 가까이 끌었던 마이클 모스의 <음식 중독>을 읽었다. 그리고 동시에 거다 리스의 <도박>도. 두 책 모두 '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중독에 취약한 내가 가장 끌리는 주제다. 왜 사람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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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이번 학기에 대학원에서 드라마 비평 수업을 듣고 있다. TV드라마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극'을 의미하는 '드라마'를 보고, 읽고, 논하는 수업이다. 그 덕에 나도 수업에서 다루는 작품들을 최근에 함께 보게 되었다. <맥베스>, <그을린 사랑>, <맨 끝줄 소년>, <날 보러 와요>가 최근 수업에서 다뤘던 작품인데, 그 덕에 맨 끝줄 소년을 영화로 만든 프랑수아 오종의 <인 더 하우스>로 글도 하나 남길 수 있었으니 꽤 소중한 수업인 셈이다.


최근에는 같이 <세일즈맨의 죽음>을 봤다. 제목과 내용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연극으로 본 건 처음이다.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 앞에서, 한 사람의 필사적인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 전체가 결국 파국을 맞이하는 비극인데, 과거 그리스 비극이 영웅이나 고귀한 신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아서 밀러는 보통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비극을 그려냈다. 덕분에 관객은 주인공의 자리에, 감히 자신을 대입하고 그를 둘러싼 세계에 분노하고, 그의 선택에 연민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신탁과도 같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닌, 어쩌면 우리가 함께 걷어낼 수 있을지 모르는 사회적 상황이 비극을 조성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역으로 극을 통해 우리는 이 세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60년 넘게 일해 온 세일즈맨 윌리는 오늘도 차 사고를 내고 밤늦게 집으로 들어온다.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은 친절하고 사려깊은 아내 린다 뿐이다. 장남인 비프는 한 때 고등학교 미식축구 인재로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 예정일 정도의 인재였지만, 지금은 끊임없는 사업 실패와 도벽에 시달리는 서른 넷의 미혼 백수일 뿐이고, 차남 해피는 성격은 그런대로 모나지 않지만 문란한 생활에 빠져 미래를 포기한 듯 살아가는 날라리다. 종종 카드를 칠 정도로 친한 옆집 찰리의 아들인 바그너는 어느새 변호사가 되어 끊임없이 윌리의 열등감을 자극한다. 가끔씩 들리는 환청과 쇠약해진 기력에 더 이상 세일즈맨 생활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생각에 윌리는 자신이 평생 일한 회사의 사장인 와그너에게 내근직을 달라고 할 심산이다. 그러면서 비프에게 사업가로서 성공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비프는 뭔가 자신이 없다.


극은 윌리가 세일즈맨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현실로 옮기면서부터 급격하게 전개된다. 아버지 와그너에게 바친 헌신을 알아줄 거라는 윌리의 기대와 달리, 아들 와그너는 새로운 기계들에 매료된 사람이자 그런 헌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냉정한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목소리를 높인 윌리에게 정중하지만, 확실히 해고를 선언한다. 유일하게 기대하고 있던 비프의 사업 자금 대여 여부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원래라면 서로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술집에서 서로의 가장 밑바닥을 할퀴는 말들을 내뱉으며 나동그러진다. 아버지는 아들의 무능함을 비난하고, 인생을 망친 것은 너라며 비난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헛된 기대가 너무나 부담스러웠으며 우리는 좀 더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라 요구한다.


형인 벤은 알래스카로 일찌감치 떠나 자신의 운명을 확실하게 깨닫고 성공했기에, 언제나 윌리가 힘들 때마다 찾는 존재였다. 그리고 벤은 윌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며, 조금 더 빠르고 확실하게 선택하기를 요구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고, 벤처럼 떠나지 않고 이 곳에서 세일즈맨을 하면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분명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말을 흐리곤 했지만, 그 싸움 이후 더 이상 윌리는 벤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는 데 실패하지 않는다. 그리고 끝내 그 선택은 성공한다. "그 애에게 뭔가 남겨주면서 나를 더 이상 혐오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남기는 선택을. (물론 그것이 정말로 온당한 선택인가? 린다가 독백으로 남기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이 선택이 얼마나 잘못되고 독선적이고 오만한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윌리의 오만한 선택마저 윌리의 온전한 책임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는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세일즈맨'이라는 혹평도 듣지만, 그는 가장 비싼 것을 보험사에게 파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자식들이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의 죽음 앞에서 그의 삶을 '실패'라고 평하는 첫째, 그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업'으로서 실현해 보이겠다고 자신하는 둘째를 보며 그 마지막 시도마저 빗나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주며 끝을 맺지만. 이 비틀린 열정과 운명의 결과물들을 뉴스로 마주하는 일이 오늘도 그리 드물지 않다는 데에서,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윌리들을 양산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비극은 무대 위가 아니라, 삶들 속에서 무심히 반복되고 있다.


그와 그의 가정이 붕괴한 것이 그의 탓인가? 시대가 그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가 모든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사실을 뜻하는가? 매일 비루해져 가는 것이 인간의 삶일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서 밀러의 시선은 꽤 냉소적인 것 같지만, 린다의 입을 빌어 그래선 안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그가 훌륭한 인품을 가져서가 아니라, 단지 그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벌어지는 일들에 모든 책임을 다 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에게 육박해 오는 '산불'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아들이 이야기하듯, 그의 삶이나 아들의 삶 모두 시급 1달러짜리 싸구려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어떻단 말인가? 윌리가 술집에서 아들의 가장 날카로운 말에 찔려 비명을 지르듯 내뱉는 "난 싸구려 인생이 아냐! 나는 윌리 로먼이야! 너는 비프 로먼이고!" 라는 대사는 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대체 가능한 노동자 1, 노동자 2 이기 이전에 이름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비록 시스템은 잔인하게 우리를 버릴지언정, 그리하여 산불의 한 가운데 내던져버릴지언정, 관객인 우리는 이름을 가지고 이곳에 온다. 그런 삶을 외면하는 것이 온당한지 연극은 관객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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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될 거라 착각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개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조금씩 부서지는 나이가 되어 매일 떨어져 나가는 나의 일부분을 속절없이 바라보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혹은 너는 잘 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말들을 내던지는 눈망울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웠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비프의 절규와 절망 섞인 몸짓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군가 그렇게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비슷하게 소리치며 부서지지 않았을까. 나는 산산조각날 용기가 없어서 조금씩 잘라내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꽤 큰 덩어리를 바다에 떠나 보냈다. 얼마만큼 잘라내고 나면 언제쯤 초라한 나만 남을까.


연극은 언젠가, 미래가 될까. 누구나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에 이제는 비극을 우회하는 시대에, 리얼리즘 비극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운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로 나와 당신은 윌리처럼 마지막 운전대를 잡고 웃음을 짓지 않으리라 보장하는가? 아마도 우리는 운전대를 잡고 나서야 당신의 이름이 윌리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윌리, 시간이 별로 없다." 우리는 벤의 유혹적이고 확고한 목소리를 우리 뜻대로 오독해야 한다. 이 비극의 시대를 끝장 내기에는 우리에게 정말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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