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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May 17. 2023

앞으로 올 '오송역'을 위하여

2023.05.17. 전현우, <오송역>


오랜만에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핸드폰을 엎어둔 채로. 집중력 상실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도 반주로 한 터라 솔직히 말하면 끝까지 책을 읽어낼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꽤 재미있는 책이어서 그랬는지, 카페 영업이 끝날 때까지 꽤 많이 읽을 수 있었다. 남은 뒷부분이 궁금해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서 곧바로 책을 펼쳐 마저 읽어서 끝을 내고야 말았다. 


전현우의 신간 <오송역>이었다. 3년 전 그는 다이어가 그려진 표지가 인상적이었던 책 <거대도시 서울 철도>에서 오송역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별도의 후속 저술을 준비 중이라는 주석을 보고 이 책이 언제쯤 나올지 기대하며 이 부분에 밑줄도 그어놨었다.)

이 책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지만, 충북 오송역은 정치적 논리하에 경부고속선과 호남고속선 사이의 분기역으로 설정되었다. 알 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제적이라고 인정할 만한 이런 선택들이 현실에서 계속 이뤄지는 것은 산학계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연구와 그에 따른 지식이 그 경계를 넘어 대중에게 파급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데에서 상당 부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철도에게, 그리고 교통의 세계와 이를 공유하는 사회 전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을 넘어 철도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쟁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저술의 형태로 철도를 둘러싼 다양한 인과적 연관성을 검토해 나가는 작업이 지금보다 더 많이 이뤄져야만 한다. (15p)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오송역이라는 기묘한 분기역이 선택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1)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2) 분기역 결정 이전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와 전략적 행동들을 설명하며 3) 분기역 결정 이후의 여파와 논란 그리고 4) 주어진 한계점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를 제언한다. 


오송역이라는 분기역이 선택된 배경을 두고 두 가지의 신화가 대립한다. 1) 오송역은 지역균형발전을 구현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2) 오송역은 지역이기주의의 불합리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이 주장은 둘 다 지나치게 현실을 단순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1) 오송역이 실제로 지역균형발전을 제대로 구현하지도, 훌륭한 사용자 경험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2) 오송역 이외의 대안이 왜 설득력이 없었는지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의 요구에서 무언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틀이 없었다면, 이런 현실은 충북 바깥의 거대한 골리앗들에 의해 그리고 오송역에서 불편을 느낀 수많은 시민들에 의해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따라서 전현우는 1) 오송역이라는 분기역이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맥락이 있고, 그 안에서 충청북도/청주시는 어떻게 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활동하였는지를 파악하여 그 결과를 이해하는 것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도출되었을 때 이를 수정하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책의 내용은 이보다 더 풍부하지만, 간략하게만 설명하면 이렇다. 충청도의 지리적 조건은 일본이 경부선을 공주와 청주 대신 천안과 대전을 지나도록 부설하게끔 제약했고, 이로 인해 수운의 중요성이 약화되며 공주는 쇠락하지만, 청주는 강원도의 주요 자원인 석탄과 석회석을 경부선으로 연결하는 충북선과 경부고속도로의 부설 등을 통해 충청북도의 주요 교통 요지로 자리잡았다. 


핵심은 이것이다. 세 도시는 모두 철도망에서 나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도시 이외의 지역을 개발의 배후지로 활용할 수 있는 행정구역, 거리, 교통로 조건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을 가진 이들 도시는 충남북 접경 지역에 서로 경계를 마주보고 아주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의 행정구역 면적 규모에서 경계를 바로 마주하는 도시들마다 고속철도를 정차시키려면 속도를 희생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배후지를 가지고 있는 대도시들이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밀집해 있다는 이 조건은 충청권을 통과할 다음 세대의 길을 놓고 이들 세 도시가 격전을 벌이게 만들었다.


1989년,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정부는 그 해 한국고속철도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노선은 세 개였다. 경부고속선(서울-부산), 호남고속선(천안-목포), 동서고속선(서울-강릉). 호남고속선은 천안역에서 분기해 공주-익산역으로 이어지는 경로였고, 경부고속선의 천안-대전 경로는 직선에 가까웠다. 세 도시 가운데 충청북도의 청주는 경부고속선의 본선에서 배제되었다. 청주를 거치면 표정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충청북도의 당시 가장 주요 도시였던 청주시가 배제되자, 충청북도 차원에서 집단적 반발이 발생했다. 국회의원 정종택을 중심으로 한 청주 지역 유지들은 부강터널을 폭파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의외로 정부는 유화적으로 대응했는데 여기엔 비교적 노사분규가 적었던 지역적 특성, 충청도 표를 필요로 하던 정부의 상황, 폭탄 테러에 대한 낮은 민감도, 청주 공항의 표류, 그리고 막 시작된 지방 자치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저자는 판단한다. 단순히 협박에 굴복한 게 아니라, 당시 충북이 제안한 대안이 어쨌든 꽤 정책결정자에게 합리적이고 매력적이었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정부는 본선 자체가 청주시를 경유하도록 계획을 변경했다. 하지만 도심에 가깝게 철도를 부설하기엔 굴곡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대신 배후 평야가 넓게 퍼져있으면서도 도심으로부터 15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차장으로 쓰던 오송이 청주의 관문 역할을 맡았다. 


문제는 호남고속선 분기였다. 오송역을 부설하기로는 했지만, 여전히 호남고속선 분기는 천안역에서 이루어지도록 한 계획은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면 오송역은 그저 지나가는 역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에 충청북도는 10년 넘는 시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에 동조할 세력들과 적극적으로 연합하거나, 오송역 분기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조직적으로 항의하는 등의 집단행동에 나섰다. 공청회를 무산시키고, 천안 분기를 고집하는 교통개발연구원을 호남고속철도 기본 계획에서 배제하게 만들고, 집단 탈당이나 항의방문과 같은 방식도 택했다.


노무현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추진한 신행정수도 입지를 두고 여러 후보지들이 물망에 올랐을 때, 충북은 오송과 가장 가까운 연기군(현재 세종시)을 지지했다. 그래야 천안과 대전 분기가 아닌 오송 분기의 명분을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적 맥락도 한 몫 거든다. 열린우리당이 충남북에서 압도적 우세를 거두는 동시에 한나라당도 자민련을 제치고 충북 주요 지역에서 2위를 차지했다. 비록 행정수도 이전에 있어서는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지만 분기역 입지를 두고는 이견을 보이는 충남과 충북 사이에서 한나라당은 당론으로 오송 분기를 채택함으로써 조금 더 수월한 충북 지역 공략을 시도한 것이다.


문제는 분기역을 결정하기 위한 평가추진체계에서 최종 점수를 산정하는 분기역 평가단이 충청북도와 대전시의 합의로 전문가 위주에서 광역지자체장 추천 인사 위주로 구성이 변경되면서 발생했다. 당시 광역지자체장은 대부분 한나라당 소속이었고, 한나라당은 당론으로 오송 분기를 채택한 상황이었다. 이에 사실상 의사 관철이 불가능하다 여긴 충남과 호남 대표단은 퇴장했고, 남은 이들은 오송 분기에 최고점을 부여했다. 그렇게 오송 분기는 현실이 되었고, 그 정책 결정의 여파는 지금도 이용자들과 주변 지역에 계속해서 미치고 있다.


충남과 충북 사이에서 실리를 얻으려 했던 대전은 마땅한 소득이 없었고, 상대적으로 늘어난 거리로 인해 증가한 요금은 호남고속철도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개인 부담으로 남았다. 또한 역간거리가 짧아져 표정속도가 느려지는 바람에 소요시간도 늘어났다. 그리고 오송역은 그 어떤 도심지로부터도 공평하게(!) 멀어 이용자들의 불만을 야기했다. 더욱이 세종시와 대중교통 연계도 빈약해 세종시가 자동차 포화상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게다가 세종시로 수도권 인구를 유입시키겠다는 애초의 목표가 무색하게, 세종시의 인구 증가는 대부분 영남과 호남, 그리고 충청지역으로부터의 유입에 의존하고 있다. 저자는 오송 분기는 그 정책적 결정이 일어나게 된 상황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기에 이를 바로잡기 위한 (혹은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반성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본다.


설사 많은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믿고 있는 정책이라 해도, 이 정책은 무언가를 포기하고 얻은 결과다.
정책이란 이처럼 일종의 동적 과정 속에 놓여 있다. 고정된 상태로 남아있는 정책이란 존재할 수 없다.
중립적이며 강제력 있는 감시 위원회, 이것이 이미 오차가 벌어져 많은 것이 진행된 오송 분기에서 그나마 오차를 수정하여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도록 만들 제도적 기반이다.

결말부에 그가 제시하는 내용에 대해서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세종시를 관통하는 노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노선을 놓기로 한다 해도 이것이 또 수많은 행위자들의 이해관계 틈바구니에서 굴절되며 원하지 않았던 결과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방이 자기 결정권을 통해 결과적으로 자신을 약화시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 오송역 일대기를 통해 반성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과정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지 싶다. 


냉소하지 않고, 조롱하지 않고 이 사건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접근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앞으로 마주할 무수한 '오송역'을 이용할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한 번은 거들떠 볼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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