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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Jul 27. 2023

인간이 뭔가를 배우긴 할까

23.07.27. 이레네 바예호, 갈대 속의 영원



책이 타버리면, 책이 부서지면, 책이 죽으면, 우리 내면에서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뭔가가 훼손된다. 책이 불타면, 모든 생명, 그 안에 포함된 모든 생명과 그 책이 장차 모든 생명에게 줄 수 있었던 따스함, 지식, 지성, 기쁨, 희망도 죽는다. 책을 파괴하는 짓은 그야말로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다. (299)


이미 마음이 죽어버린 사람들이, 미래의 사람들을 죽이려 든다. 이미 마음이 죽어버린 사람들이 지옥의 통로를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시도들은 영원히 우리에게서 어떤 책들을 앗아갔지만 책 그 자체를 빼앗아갈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두툼한 책을 오랜만에 끝까지 봤다. 물론 단숨에 읽기엔 집중력을 도둑맞은지라, 며칠에 걸쳐서 읽었다. 어딘가 써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들에 밑줄을 치고, 플래그를 붙이다보니 책 표지 모서리가 해졌다. 오랜만에 한참 책 속에서 헤맸다. 얇은 책들을 요새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책을 읽으면서도 헤메지 않을 수 있어서 그런건데, 이 책은 여지없이 헤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에세이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의 박학다식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눙치는 상황에 진절머리를 낸다. 주제를 간결하게 드러내기보다 그 주제의 주변에 언어화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죄다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기계를 마주하는 데에서 오는 경이와 탄식이라고 해야 하나.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히 읽는 사람 입장에서 문장 자체에서 헤엄치는 일은 가끔씩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소설을 점점 못 읽게 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다. 책은 언제부터 지금의 모습이었을까? 사람들은 왜 책을 쓰려고 했고 또 불태우려고 했을까? 어떤 책들은 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았고, 어떤 책들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결국 내가 사랑하는 대상의 기원과 역사라는 하나의 주제로 통합된다. 편파적이지만, 책을 사랑하는 편이기에 책에 대해 주절거리는 모든 것들에 너그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간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그 전까지 인간은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건넸다. 비교적 외우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진 시와 노래가 인류의 기억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었다. 외운다는 것은 똑같이 반복한다는 것이라 새로운 역사가 쓰일리는 만무했다. 게다가 한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는 양의 기억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어디엔가 고정시켜 더 오래 보존할 수 있다면, 비록 그렇게 붙잡아 둔 문자들이 입 밖으로 소리내어 외던 문장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복원하진 못한다 할지라도, 인류는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 기억한다면, 배울 수 있다. 책은 인류의 기억으로서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다른 판본을 가질 자유를 얻었다. 더 많이 기억할 여유도 생겼다. 


알파벳의 발명은 상인에게 영향을 줬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구술의 현혹에서 벗어나 글을 통해 전통적 역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역사를 의심할 수 있도록 했다. 바로 거기에서 비판 정신과 글로 쓰인 문학이 태어났다. (141)


최초의 책은 아마도 돌이나 점토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들고 다니기 편하지 않은 소재들인데다 보존하긴 쉬워도 만들긴 어려워 대량으로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일강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난 파피루스는 책의 역할을 급격하게 확대시켰다. 불에는 잘 타겠지만, 가볍고 부피도 작아 보관하기에도 좋았다. 종이가 책의 재료가 되면서, 인류의 기억은 더 많이 복제되고 더 많이 전승되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엄청난 진보였다. 수 세기에 걸쳐 돌과 흙과 나무와 금속을 이용해 쓰여오던 언어가 마침내 제대로 된 재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책은 언어가 수생식물의 줄기에 자리를 틀면서 탄생했다. (42)


그러나 누군가는, 이 기억을 불태워버린다면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끊임없이 한 쪽에서 문장들을 종이에 새기고 있는 도중에, 다른 한 쪽에선 그렇게 공들여 만들어진 책들을 불태우며 환희에 젖었다. 자신들의 악행이, 자신들의 무지가 적혀 있는 종이를 불에 태운다면 아마도 그들이 원하지 않았던 기억은 더 이상 깃들 곳이 없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몇몇 책들은 영원히 멸종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불에 태웠다'는 사실조차 기억한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은 아직까진 불태우는 쪽이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다. 책은 요약을 목표로 쓰여진 문장들이 없다. 오히려 저자가 무한히 생성해 낸 문장들을 함께 음미하면서 책에 얽힌 이야기들을 마음의 빈 서판에 새겨두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는 갈대 속에 영원을 새겨놓으려던 사람들의 뜻을 이어, 영원히 쓰일 책이 될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골라내어 유해 도서라 지정하고,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을 지우려고 시도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도서관장을 끌어내리는 사람들이 끝내 불태울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책을 태우는 행위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옛 질서의 잿더미 위에 새로운 질서의 토대를 마련하거나 작가들이 더럽힌 세계를 재생하고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276)
노예의 주인들(독재자, 폭군, 절대 군주, 기타 불법적인 권력의 소유자)은 문자의 힘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들은 읽기가 몇 개의 단어만으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 문장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다. 글을 모르는 군중은 지배하기 쉽다. 읽는 기술은 한번 습득하면 버릴 수 없기에,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독서는 금지되어야 했다. (348)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자와 책을 불태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를 통해 인간이 뭔가를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지울 수 없는 것을 지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계속 책을 불태우는 모습들을 본다. 그들에게 역사가 가르칠 시간이 곧 오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모두를 불구덩이에 몰아넣지 않는 한, 몰아넣는다 해도 누군가는 읽고 있을 것이다. 


"한 시대가 이전 시대와 단절되고 세기가 탯줄을 끊어버린다면 우리는 미래가 없는 우화밖에 만들지 못할 것이다. 질식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 엘리아스 카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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