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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Mar 11. 2024

근황

1.

2018년부터 썼으니까 햇수로는 6년을 썼다. 다 합쳐 80번도 안 되지만 꾸준히 쓰긴 했다. 필진 교체를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아쉽긴 하지만 늘어지는 마감에 별 내색 안 해준 편집자님을 더 괴롭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게 후련하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하나씩 다듬어보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엄두가 안 난다. 덕분에 매번 책을 읽었다. PD일 하면서 책을 꾸준히 읽는 게 쉽지 않는데, 억지로 습관을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는 게 좋았다. 언젠가 또 다시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2.

얼레벌레 80페이지쯤 되는 글을 써서 보냈다. 거의 반년을 끌고 있던 원고였는데, 일단 교정을 보실 수 있게 끝은 맺었다. 마음같아서는 처음부터 다시 다 쓰고 싶지만, 그래서야 내년쯤에나 끝나겠다 싶었다. 읽을만한 글을 쓴 건지, 아니면 일기를 쓴 건지 아직도 긴가민가하다. 팔리게 써야 하는데. 글을 쓰고 나니 이걸 지금 편집자님 읽으라고 준건가 싶어서 괴로웠다. 

글을 쓰는 내내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쓸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문장이 사라졌다. 문장을 생산하지 못하니 글도 진도가 안 나갔다. 한동안 백지에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낸 것 같다.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비겁하게 도망다니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야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어쨌든 앞으로 나아갔다. 오래 나와 싸웠다.


3.

새 프로젝트를 어찌저찌 시작했다. 촬영은 끝났고 반성이 남았다. 이럴 것 같아서 드라이 리허설 느낌으로 한 번 촬영을 해봤는데, 역시나 바꿔야 할 것들이 많았다. 출연자들이 현장에서 말해준 것들, 찍으면서 느낀 것들을 어떻게 수정해서 보완할지가 관건인데, 잘 해낼 수 있겠지. 안 하던 걸 하려다보니 몸이 괴롭다.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의 마이너한 취향을 한탄했다. 좀 더 대중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먹고 사는 게 더 편하지 않았을까, 나도 팀원들도. 내가 재밌어 하는 것들이 사람들도 재밌어 하는 거였다면 어땠을까. 그런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으로 세상을 살까? 어떻게든 조율해보려고는 하지만 아직도 쉽지는 않다.


4.

머리를 짓누르던 것들이 저번주에 대강 해결이 되어서, 슬슬 책을 읽을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거의 버려놓고 있었던 브런치 글도 손끝이 간지럽기 시작해서 여기저기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쓰지 않고 배길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직 이럴 여유 부릴 때가 아닌데. 하지만 여유가 있어야 쓰나. 힘들고 몰릴 때 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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