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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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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7. 그레천 매컬러, 인터넷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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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봤어?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먹은 일이 있다. 이전에 책모임에서 보자고 해 놓고 어영부영 넘어간 책들을 다시 보면서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책모임에서 보자고 추천할 정도로 괜찮은 책인데 정작 말만 하고 끝난 경우가 많아서, 나중에 그 책에서 내가 뭘 봤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 아쉬웠다. 글로 남겨둬야지 하다가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무덤 앞에서야 노트 펼쳐놓고 쓰게 생겼다 싶었다. 다행히 늙기 전에 쓰겠다고 맘 먹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볼 수 있게 됐다. 


그레천 매컬러의 <인터넷 때문에>도 몇 달 전에 책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보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좀 괴이한데, 이 책을 통해서 내 독특한 글쓰기 습관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나는 말 끝마다 말줄임표(...)를 붙인다. (브런치에 쓰는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빼고 있는데, 그건 최대한 점잖은 척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다...) 그래서 연애 초반에 아내도 내게 물어본 적이 있다. 혹시 기분 나쁜 일이 있냐고. 나는 답했다. "네...? 아뇨...? 그냥 습관인데요..." 이 빌어먹을 습관은 어디서 왔을까? ("오 마이 썬... 컴퓨터 고쳐 줘서 땡큐배리머치..." 라고 아버지가 보낸 카톡을 보니 대충 짐작은 가는데)


아내와는 웃기는 에피소드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지만, 가끔 모골이 송연할 때도 있다.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도 뭔가 기분 나쁜 티를 낸다고 생각해서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날 때다. (제가 많이 죄송합니다...) 내가 말줄임표에 담는 의미나 감정이 다른 사람들이 말줄임표를 통해서 느끼는 것과는 판이할 때, 자칫하다간 소통이 실패하고 관계를 비틀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종종, 나는 어쩌다 이 문장부호를 사용하는 족속이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그 답답함을 좀 해소해주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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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여진 것들만 보면, 언어 변화의 속도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문헌'이라는 언어의 한 형태는 언어의 분열을 꽤 잘 감추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 문장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표준어를 참조할 수밖에 없으니, 자의식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말이 문장으로 남는 경우는 드물었다. 실제로 입말은 끊임없이 변해왔는데 그것이 문장으로 고스란히 남지를 않으니 실제 변화하는 속도를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체감하기 쉽지가 않았다. 인터넷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켰다.


예전에는 공간적/시간적 한계 때문에 마주하지 못했던 다양한 입말들의 변이를, 인터넷이 한데 모아 보여주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곳에서 글을 쓸 수 있었으니까. 그동안 기록으로 남지 않았던 변이가, 인터넷에서는 자료로 고스란히 남았으니 언어 변화를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 열렸다. 게다가 동시에 다양한 변이가 한데 연결되면 언어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저자는 약한 유대와 강한 유대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약한 유대란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는 정도의 관계다. 돌연변이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유전자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듯이, 약한 유대가 동시에 여럿 연결되면 언어는 크게 변한다. 강한 유대는 그렇게 변한 언어를 계속해서 사용해 줄 친밀한 관계다. 강한 유대가 많을수록 변한 언어는 오래 살아남는다. 인터넷은 더 많은 약한 유대를 창출하며 언어 변화의 속도를 높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방언은 정체성과도 연결되는데, 자신이 어떤 사회적 정체성으로 살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방언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R발음이 들어가냐 마냐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건 이런 의미다. R발음 자체는 큰 의미가 없지만, R발음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당신이 어떤 계층에 속하길 선호하는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가끔 유튜브 쇼츠로 한국 사람이 포쉬 억양과 뉴욕 억양 비교 영상을 올린 걸 마주할 때마다 좀 당혹스러운 거다. 그 발음을 하든 말든 당신 한국 사람이야...) 이게 한국까지 들어왔다는 것도 인터넷이 만들어 낸 약한 유대의 연쇄작용이겠지만...


그러니까 저자는 언어를 일종의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표준어고, 어디서부터는 표준어가 아니라 무 자르듯이 나눌 수는 없다. 표준어라는 것 자체도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계속해서 그 경계가 흔들리는 것이고, 표현하고자 하는 정체성에 따라, 자신이 접하는 다양한 유대관계의 언어 습관에 따라 내가 쓰는 입말은 다소간 '표준어'로부터 거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무질서한 상태로 흩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다음 장에서 이러한 스펙트럼 내에서 몇 개의 기준을 바탕으로 특정한 언어 집단들(민족들)을 구별해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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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에서 저자는 인터넷 민족을 구분하기 위해 인터넷에 언제 어떻게 이주했느냐는 기준을 내세운다. 인터넷이 우리 삶에 들어온 지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데, 인터넷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시기가 다른 세대가 여럿 생기고도 남을만큼 길다. 한 사람의 언어적 토대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주로 형성되고, 그 다음엔 새로운 사회집단에 가입하는 시기에 또 다른 토대가 형성되는 경험을 대부분 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어느 나이에, 누구와 함께 받아들였냐에 따라 인터넷 안에서 쓰는 언어 습관도 완전히 다르지 않을까? 저자는 요 길을 따라 크게 다섯 개의 집단으로 구분한다.


1) 오래된 인터넷 민족 : 아직 인터넷이 '쿨'하지 않던 시절에 접속해서 그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던 사람들. 시대를 앞서 기술의 가능성에 흥분하고, 기술에 익숙하고 기술을 배우는 데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인터넷이 일부의 취미일 때 이주한 사람들로서, 평균 기술 숙련도가 가장 높다. 당시엔 인터넷도 느리고 접속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방법을 고안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방식은 '약어' 쓰기다. R U THERE, CUL과 같은 약어 규칙이 처음 만들어지고 알음알음 쓰였다. 


2) 온전한 인터넷 민족 : 평범한 사람들이 집과 고등학교, 직장에서 온라인에 접속하기 시작한 시기에 온라인에 접속한 두 집단 가운데 하나. 이들은 인터넷을 '사회생활의 매개체'로 완전히 받아들였다.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었고, 새로운 유행에 민감한 편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 성년이 된 나 같은 경우가 여기에 속할텐데, 메신저 사용에 익숙하고 자신들의 말하기 관행을 인터넷에서 거리낌없이 사용했다. 오래된 인터넷 민족이 월드와이드웹(WWW)처럼 세계적 공동체에 참여하는 데 열의를 보였다면, 이들은 더 작은 영역의 공동체에서의 우정을 지속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의 열성적인 사용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3) 준인터넷 민족 :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에 인터넷에 이주했지만, 여전히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예전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인간관계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많았고, 사회생활을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에 이미 확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일 때문에 온라인에 접속했다가, 뉴스를 읽고 쇼핑을 하는 등 그 활용 영역을 조금씩 넓혀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를 훨씬 더 선호한다. 사회생활에서 확립된 말하기 관행 - 소위 에티켓 - 을 온라인 공간에서도 활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4) 인터넷 이후 민족 :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인터넷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던 어린 세대. 1~3에 속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대해 다양한 태도를 지닐 수 있었다. 인터넷은 삶이 시작된 이후에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선택이 가능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열광하여 뛰어들고, 누군가는 평범한 수준으로, 누군가는 마지못해 사용하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이들은 선택지가 없다. 이들은 별 이유도 없이, 엄청난 빈도로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5) 인터넷 이전 민족: 인터넷과 친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장 늦게 인터넷에 합류하기로 한 사람들. 지금도 내켜하진 않는 것 같지만, 너무 많은 정보와 사회 생활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접속하고자 맘먹은 이들이다. 보통 그들은 인터넷에 더 익숙한 다른 사회구성원의 도움을 받는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언어 습관에 익숙하지도 않고 큰 관심도 없다. 대신 "이 사람들의 공통된 언어학적 일화는 이들이 분리문자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집단의 수많은 사람은 대시나 마침표 여러 개, 혹은 쉼표 여러 개를 사용해 생각의 단위를 구분한다."(146) (네?! 뭐라구요?!)


대시나 말줄임표를 일반적인 분리 문자로 사용하는 경향이 정확히 얼마나 퍼진 것인지에 관한 통계는 없지만, 최소한 영어권에서는 이런 경향이 두루 발견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트위터에서 더 많은 일화를 요청하자, 어떤 사람이 "우리 시부모님이랑 문자하셨어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146-147)
인터넷 이전 민족('점점점'을 사용하는 준인터넷 민족과 오래된 인터넷 민족도 일부 있지만, 인터넷 이전 민족만큼 광범위하게 존재하지 않는다)은 자신들이야 유창하게 쓰지만 디지털 시대의 젊은 독자들은 잃어버린 어느 장르의 관행을 충실하게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150)


이렇게 다섯 가지의 민족을 구분한 이후에 그가 묻는 질문은 이거다. "당신이 문자메시지에 구두점을 찍는 방법을 선택할 때 염두에 두는 상상 속 권위자는 누구인가? ... 당신의 비격식 문어는 온라인 세계에 속하는 규칙을 지향하는가, 오프라인 세계에 속하는 규칙을 지향하는가?"(163) 여기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당신이 어느 '민족'에 속하는지가 갈릴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에게 "..."은 그냥 분리 문자에 불과하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은 분리 문자가 아닌 어떤 감정의 표현이다. (분리 문자는 행갈이로 대체된다) "나이 든 사람들이 보낼 생각조차 없었던 사소한 신호에서 감정적인 의미를 읽어"(163)내는 것은 역으로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 말하기 형식을 취하고 있는지 드러낸다. 


3장에서는 인터넷 안에서 문장부호와 대문자로 전달하는 뉘앙스가 무엇인지 분석한다. 인터넷 이후 민족 / 온전한 인터넷 민족들의 말하기 방식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 이루어진다. 이따 아울렛 가기로 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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