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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22. 2022

뮤지컬 '영화' 또는 '뮤지컬' 영화

22.12.21. 윤제균, <영웅>


* 쓰다보니 영화 <영웅>의 스포일러가 아주 대량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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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영화를 봐야 한다고 하면 부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명작을 볼 수 있을 때에나 해당되는 거지. 하지만 명작은 배급사가 곧바로 TV에 팔지 않잖아? 그렇다. 나는 주로 '망작'을 본다. 그렇다고 진짜 C급 영화를 본다는 건 아니다. (그럼 보고 온 영화들이 뭐가 돼) 안타깝게 흥행에 실패했지만 사람들이 내용을 궁금해할만한 영화, 영화관에 돈을 내고 보기에는 살짝 부담스럽지만 명절에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손이 멈출만한 영화, 뭔가 '타이틀'을 내 걸고 홍보할 수 있는 영화, 내 취향엔 전혀 안 맞지만 왠지 사람들은 볼 것 같은 영화(이 브런치를 봐라 내가 대중적이지가 못해요)들을 대충 그렇게 부르는 거지.


오늘도 일로 영화를 봤다. 윤제균 감독의 <영웅>이다. 뮤지컬 <영웅>을 영화로 만들었다. 윤제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사실 손발이 덜덜 떨렸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보기 힘들어하는 부류의 영화를 만드는 데 도가 트셨기 때문이다. 예컨대 <해운대>라든지 <국제시장>이라든지 <담보>라든지... 그래서 JK 필름의 로고가 나올 때마다 의자 깊숙히 물러나는데 마치 뤼미에르의 영화를 처음 본 사람처럼 "으아아아 열차가 내게 달려온다!"고 소리를 지를 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 아니... 시키면 하는 것이 노동자지. 그리고 JK 필름의 작품들은 어쨌든 꽤 흥했으니까...


나는 정성화 배우를 좋아한다. 그리고 정성화 배우의 발성과 연기도 꽤 좋아한다. 뮤지컬이라면 작품이 끝났을 때 아마 기립박수를 쳤을 것이다. 다만 영화라서 아쉬운 것이 있다. 뮤지컬은 무대 장치와 연기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을 관객들의 상상으로 채워야 하므로 연기가 '연기'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상상이 더 잘 되니까. 상상으로 만들어진 현실 안에 들어가는 연기는 과도해도 무리가 덜하다. 하지만 영화는 실제 존재하는 사물들의 물성이 그대로 필름에 드러난다. 과도함은 이질적으로 보인다. 이게 상업영화라는 걸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디렉션을 줄 수도 있지 싶다가도(그게 안 되는 배우도 아닐 것이고) 뮤지컬 영화 장르의 특성이라 생각하고 보면 된다 싶었다.


스코어들은 다 좋다. 전부까진 아닌데... 그래도 95% 이상 좋으니까 다라고 하자. 전곡 현장 녹음이라고 하는데, 그 덕에 얻을 수 있는 감정의 깊이가 있다. 특히 김고은 배우의 노래와 연기는, 감독이 참조한 듯한 영화의 장면이 자꾸 떠오르긴 하지만, 순간 장면들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베테랑이여 역시. 그래도, 뮤지컬 영화가 꼭 모든 뮤지컬 스코어를 다 가져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살짝 들었던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바로 만두... (그것은 만두인가 호빵인가) 만두 러버로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기가 참 힘들었지만 일단 그건 차치하고.


그 부분이 사실 붕 뜨지 않으려면, 다른 조연들이 어떻게 간신히 만주로 숨어들어왔고 그 사이에 무슨 개고생을 했고, 얼마나 오래 가족을 떠나 있었고 하는 각각의 서사가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관객이 보면서 하 거 진짜 개고생 했는데,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는 만두 앞에서 노래 부르면 아... 그래 그럴만 하다 싶어져야 이 노래가 붕 뜨는 게 아니거든. 근데 그게 없다. 이건 뮤지컬 안 본 사람들이 모두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 단절이다.


비슷한 게 마두식(조우진 役)의 고문 장면이다. 배신하지 않는다, 이 스코어 당연히 중요하지. 함께 전장에서 구르던 친구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잃었고, 그렇게 하나둘 잃어가는 전우들에 절망하며 내게 조국이 무엇이냐 신께 물음을 던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끝까지 해 내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 다시 만주벌판으로 나아가는 장면이니까. 그런데 이게 뜬금없지 않으려면 마두식이란 인물을 더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그 대신 전형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관객이 나머질 채우기를 기대하는 것 같달까? 영화의 볼륨이 뮤지컬보다 늘었는데, 그럼 빵꾸난 서사를 채우는 게 필요했다고 본다.


물론 평면적인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닌데, 정작 그 부분들이 너무 짧고 개그 용도로 쓰고 버려질 조연들에 뒤덮여서 금방 기억에서 지워진다. 그의 완강한 고집 때문에 동료들이 죽고, 그로 인해서 독립운동에 완전히 몰두하는 과정은 연출이 좀 때가 지난 것 같아도 괜찮은 시도였다 보는데, 정작 거기에 그렇게 힘이 안 실렸다. 조연들을 전형적인 캐릭터 이상으로 사용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러브 스토리, 신파, 그리고 '국뽕'을 자극하는 대리 사과...가 나를 괴롭혔다. 외골수가 되어가는 과정, 그의 최종 목표인 암살 과정을 더 밀도 있게 보여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나는 뒷좌석에서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는 소리를 들었기에 감독의 의도에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영화를 자주 보는 입장에서야 못할 말이 없다. 예컨대 따봉씬이라든지, 거울씬이라든지 하는 전형적이고 이제는 때를 지나친 개그, 물론 나도 웃었지만 갑자기 등장하는 노출씬, 컷 전환을 위해 노골적으로 화면으로 사물들을 집어던지는 연출(근데 그게 막 찰떡같이 붙지가 않아), 주인공 대신 기차가 절벽으로 추락할까봐 조마조마하게 보게 되는 CG, 서프라이즈 확장판 같은 세트 같은 거. 뮤지컬이라면 알아서 관객들이 컷을 바꾸지만 영화는 감독이 컷을 바꿔줘야만 하는데, 정작 영화가 뮤지컬의 풀샷을 오래 따라가는 장면이 많다보니 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던 경우들이 많았던 거.


하지만 그것은 예상외로(!) 영화를 보러 온 목적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이거 사람들 많이 볼 거 같냐? 라고 하면 그럴 것도 같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나랑 안 맞는 거지, 노력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감독은 분명한 의도가 있고, 그 의도가 맘에 안들었던 것일 뿐이지. 감독이 느낀 개연성의 구멍과 내가 생각하는 개연성의 구멍이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을 뿐인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영화에 기대하는 것, 혹은 영화를 통해서 추구하는 바가 감독이랑 나랑 또다른 관객이랑 다 다른 것이니까 뭐. 그리고 영화관에 오는 목적도 다르고. 원작은 흥행했고, 외국 영화 좀 꺼리는 사람이면 좋은 대안일 수 있잖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 보고 나와서 명동에서 신세계 백화점 벽면에 그려지는 크리스마스 맞이 LED 영상들에 눈을 빼앗기고 왔다. 추위에 덜덜 떨며 호떡과 붕어빵을 연신 입에 우겨넣고 집에 돌아와 정리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이게 그래서 잘 될지 안 될지 솔직히 모르겠다. 작품이 맘에 드냐? 라고 하면 나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내가 맘에 안 들어했던 드라마들은 시청률이 20%씩 나왔으니 나를 믿을 도리가 없지 않나. 그리고 나는 지금도 <재벌집 막내아들>을 안 보고 있는 걸 생각하면...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 동떨어져서 고고하게 살아봤자 내 업에 도움이 안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또 고립을 자초할 것인가 한탄을 하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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