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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Jan 24. 2023

정이 잘 안 간다

23.01.23. 연상호, 정이(2023)

* 영화 <정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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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를 앞두고 넷플릭스에 <정이>가 공개됐다. <부산행>, <염력>, <반도>의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다. 장르는 SF로, 우주 식민지에 있는 인간들 사이에 내전이 발발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최고의 전투용병이던 윤정이(김현주 役)가 내전을 끝낼 수 있는 중요한 작전을 실패하고 식물인간이 된 후, 그의 뇌를 복제한 AI를 개발해 내전을 끝내려는 프로젝트를 그녀의 딸인 윤서현(故 강수연 役)이 맡는다. 하지만 전쟁은 해결 국면에 들어서고 AI 개발은 종료 위기를 맞는다. 게다가 엄마의 외모를 한 안드로이드들은 이제 전투 AI가 아니라 다양한 욕망에 봉사하는 로봇 인형으로 개발될 위기에 처하면서, 딸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배경과 몇몇 기술 장치들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딸이 모성을 발휘하여 - 그것은 배우들의 역할과 나이가 역전되어 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 자기 희생하는 가족극의 구조를 취한다. 물론 엄마의 희생이 먼저이지만, 딸도 누군가의 엄마가 될 나이가 되자 결국 젊은 외모의 딸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다. '자기의 삶을 살아요'라는 유언은 엄마와 딸 모두 자기만의 삶을 사는데 결국 실패했기에, 딸이자 엄마인 정이만은 자유롭기를 바라는 서현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A/B/C 등급으로 나뉘는 두뇌 복제의 수준이나, 윤서현의 오열과 유언같은 몇몇 장면들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피곤한데, 이는 영화가 숨기지 못한 다른 영화들의 흔적이 너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전체 영화와 큰 상관도 없는 배경 설정들을 정합성 있게 고치는 수고도 들이지 않고, SF 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디서 왔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장면들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기에 SF 팬들은 이 영화에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신파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은 SF라는 배경만 빼면 아주 전형적인 신파이기에 딱히 미워할 구석이 없다. 엄마가 딸을 구하고, 딸이 엄마를 구하며 최종적으로 엄마-딸의 지긋지긋한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유롭게 멀리 나아가라는 서사는 로봇이 아니어도 되지만, 로봇이어도 상관이 없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양비론은 없다. 심각한 설정 오류들이 있는데, 김상훈(류경수 役)이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눈에서 빛이 한 번 번쩍거린 후에 양산형 전투 로봇에 이식된 정이와 대등하게 싸운다. 최종 보스의 역할인데, 그 전까지 이 역할은 힘과는 무관한 캐릭터다. 회장이 만든 장난감과 같은 존재인데다, 프로젝트 내내 무력을 사용하는 데 능하다는 힌트조차 없다. 로봇에도 각성 모드라는 게 있나? 아주 중요한 전투 장면인데, 몰입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한 두 씬 정도는 이 양산형 로봇이 '힘숨찐' 같은 거란 실마리 정도는 줬어야 관객과 정당한 내기를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배경 설정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공들이지도 않았으면서, 정작 배경 설정을 '브리핑'이라는 씬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이유도 궁금해진다. 관객들이 그 씬에서 보여주는 장성들과 얼굴이 얼마나 달랐을 거라 생각한 걸까?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그래서 설정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면 영화 전체의 앞부분은 완전한 시간 낭비다. 재미있지도 않은 유머를 반복하는 - 회장도 그런 유머를 시도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이 처음에 있지도 않았는데 이게 과연 힌트일까? - 설명충을 배치했다면, 언제든지 관객이 멈출 수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 독점 영화로 배급하는 데 두려움있었어야 했다. 


물론 신파극은 분명한 수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들지 말라고 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잘 만들면 된다. 신파극에 설정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SF라는 장르를 택한 것은, 이 영화가 기존의 관객층 이외에도 추가적인 호소력을 갖추길 원해서일 테다.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SF 장르의 관객들이 영화 관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을 준수하는 시늉이라도 필요하다. 그래야 SF로 보고 싶은 사람은 SF로 보고, 신파로 보고 싶은 사람은 신파로 본다. <부산행>의 성공은 그나마 균형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좀비 영화의 장르적 규칙을 다 따른 건 아니지만 신선한 시도였고, 신파가 과한 장면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SF에 있어서는 규칙을 여전히 지키지 않고, 심지어 이건 신선하지도 않다...


설정이 중요한 SF에서, 설정에 그리 큰 공을 들이지 않는 영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란 불가능하다. 물에 잠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물에 잠긴 도시의 수면에 가까이 가는 장면도 없었다. 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전쟁도 심지어 의미가 없다. 그렇게 쉽게 휴전이 되면, 40년을 이어온 전쟁이 영화의 소재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결국 아무런 '그럴듯함'이 없는데, 그래픽이 좋고 주연 배우의 연기에 영혼이 있으면 뭐할까. 영화 내내 아쉬웠다. 업무의 일부분으로 본 게 아니었다면, 트위터에 '노잼 ㅅㄱ'하고 영화를 기억에서 지웠을 것이다. 정이를 해방시키기 위해 그에게서 자신과의 기억을 지운 윤소현처럼. 하지만 영화는 그럼에도 볼을 비비는 정이처럼 기억 속으로 계속 파고들 것이다. 나에게는 그게 더 조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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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체 마지막에 산은 왜 가는 것일까? 그것도 로봇의 시대에 드론 하나 없진 않을텐데 굳이 정상에 올라갈까? 삼국지에 미쳐 있는 인간들이라면 그 순간 탄식했을 것이다. 아, 저기가 가정이로구나. 어리석은 마속이여... 너 임마 거기서 물 없으면 퇴각해야 해, 아니 로봇이라 상관이 없나? 혹시 산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을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위의 방랑자> 같은 구도로 찍고 싶었던 걸까? 그러려면 내려다보는 풍경에 뭐가 있어야 하는데, 뭐가 없다. 그러니까 김현주 배우의 얼굴을 닮은 로봇의 얼굴에 햇빛을 비추려는 게 아니라면, 가 있을 이유가 없는 데에서 영화가 끝난다.


VFX의 발전을 보여주는 영화는 내게 <백두산>이면 충분하다. 이 영화는 몇몇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정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 말라고 하면 또 SF 영화의 가능성을 막는다고 할까봐 그렇게는 말 안 하겠지만, SF 영화를 만들 때 '그럴듯함'을 좀 더 중시한 영화를 보고 싶다고는 말하고 싶다. 다들 정공법으로 안 가고 자꾸 SF 안에서 신파하기, SF 안에서 연애하기 이런 쪽으로 빠지는 거 이젠 안 보고 싶다는 거야... 하지만 계속되겠지...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꽤 멋지고 슬픈 신파 영화가 될 것이다, JK 필름의 기차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듯이...


*추석 연휴에 두 번 브런치에 글 쓰다가 다운이 되었는데 진짜 천국과 지옥을 맛보았다. 그래도 두 번 다 어찌저찌 글을 살렸고, 4일의 연휴 기간 가운데 글 한 편이라도 써서 다행이었다. 며칠간 마거릿 캐노번의 <인민>과 샹탈 무페의 <경합들>,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를 읽었다. 발명된 '인민'과 고유한 '국민'이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집합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요 책들이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볼 부분들을 알려주는 것 같다. 무페에 대한 오해도 좀 바로잡고, 무페의 한계들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또 정치적 기획으로서 '인민'을 구성하려는 시도의 한계점들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시간들이었다, 연휴 기간이.


*슬램덩크도 두 번째 봤다. 역시 더빙은 더빙 고유의 장점이 있다. 아내는 흡족해했다. 초심자에게도 더빙이 주는 장점이 있다. 본 게 많은데 풀 시간은 없는 게 연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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