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으로 두 개의 글을 썼던 기록이 남아 있다. 하나는 PD저널에 연재하면서 쓴 글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훨씬 전 '철거왕'을 뒤쫓다 좌천당한 경찰의 이야기를 취재하던 때 쓴 글이다. 가재울의 뒤바뀐 풍경을 마주하던 그의 얼굴이 다시금 떠올랐다.
읽었던 시간이 다르니 생각이 다르고, 그러다보니 앞 글과 뒷 글이 서로 같은 책을 보고 말했던 것인지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둘을 붙여놓으면 언젠가 다시 또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여전히 내게 아파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대상이다. 내 손에 있어본 적 없는 것이라 그런지도 모르지.
1. 아파트 '가치', 어디서 나오나 / PD저널 (2020.12.11.)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1994
2. 메모 2018.8.17.
독자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책들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결국 끝까지 읽게 만드는 그런 책들. 이 책은 하루 밤을 꼬박 나를 붙잡았다. 아파트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같은 '신도시 키드'들이라면 아마 모두 그렇게 붙잡혀 있었을 것이다.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막상 서로는 잘 모르고, 잘 몰라야 하는 공간인 아파트 ‘단지’에서 유년시절은 보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다루는 사건들이 마치 내 유년시절의 기억인 듯 생생할 것이다. 이 책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막상 공공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보니 벌어지는 각종 비리들이나, 그 비리들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들마저 무관심 앞에서 동력을 잃어버리는 사례들이 풍부한데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나의 아파트 관리비가 야금야금 올라가는 동안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지?
이 책엔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수많은 행위 주체들의 욕망들이 잘 드러나 있다. 저자는 그 욕망들 중 특정한 편을 들어 어떤 것은 정당하고 어떤 것은 부당하다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다양한 욕망들이 짜 놓은 직조물로서의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분석해, 예상치 못한 ‘정치적 각성’의 계기나 그것을 통해 어렴풋이 드러난 아파트 공동체의 윤곽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약간의 거리두기가 주는 약간의 냉소에서 오는 위트들을 찾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묘미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이번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책의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례들은 사실 아파트에 거주해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 정도는 마주했을 일들이다. 그리고 모두 어딘가의 입장에 서서 그 사건들을 대했을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내가 서 있지 않던 입장에서 그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단순히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그 욕망이 일종의 ‘주조된 것’으로서 모두에게 하나의 모델로 장착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 욕망을 철저하게 실현시키려는 행동이 역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가는 우연한 계기들이 된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전에 '철거왕 이금열'과 그의 비리를 추적하다 결국 한직으로 쫓겨난 한 경찰관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적이 있다. 그 때 그 경찰관으로부터, 그리고 수많은 관계자들로부터(심지어 철거업체 이사까지) 들었던 아파트 재건축 시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이 책을 그 때 마주할 수 있었다면 아마 좀 더 쉽고, 정확한 말들을 방송으로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도 들고 그렇다. 물론 그 때 뭔가 덜 말했다는 생각을 하진 않지만, 나레이션을 하던 아나운서 선배가 너무 ‘한쪽’에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했던 게 떠올라 조금은 부끄러워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