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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Mar 04. 2023

흐르는 눈물로 고독과 막연함을 털어냈다

홀로서기

암담하고 고독하다는 느낌이 몰려왔을 때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뜨겁고도 서러운 감정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내가 선택해서 당당히 걸어가려던 길이었는데 도처에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부딪쳐서 좌초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울에서의 일상이라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과 함께 저녁상에 둘러앉아 따스한 온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잘 익은 과일을 깎아 내서 딸아이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치며 아내의 회사 일도 들으면 그날의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설령 나의 어려움을 나누지 않더라도 문제가 풀어지고 정말 해결해야 할 일이라면 아내와 시간을 내어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었던 아내와 가족을 떠나 왔다는 사실이 새삼 슬펐다.

 

이곳에 와서 하루 세끼를 혼자서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그건 나 혼자만 결정한다고 실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각자의 일정과 수업이 다르고 사역에 지치다 보면 누구를 자연스럽게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어렵다.  


한 번은 서랍에 넣어두었던 돈이 사라졌다.

현지 돈의 액수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100불짜리 달러는 정확히 얼마가 있었는지 기억하는데 100불짜리 한 장이 비어있었다. 우리 집을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사람은 일주일에 두 번 청소와 빨래를 위해 오는 싱글맘이다. 아파트 외부에는 CCTV가 있어서 사람의 출입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일에 필요한 카메라와 노트북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창과 문을 항상 단속하며 살아가야 하는 1층 생활이 자유를 조이며 속박해 오는 것 같았다.


이곳에는 혼자된 여성들이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남자가 떠나가서 남겨진 아이들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엄마들이다. 싱글맘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은 이들의 자립을 도우려, 재봉을 가르치고 실을 사줘서 수세미를 만들면 이를 사주고, 이들의 일자리도 만들어주려고 애쓰신다. 그런 어려움을 알고 있으니 당당히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이다. 우리 집도 그렇게 연결된 싱글맘이 오는데 일주일에 3번은 일하고 싶다는 것을 그냥 두 번 만 오라고 했던 터였다.  


아파트 전체를 지키는 현지관리인은 나에게 CCTV를 보여주며 유감을 표했다.

감시 카메라가 있지만 정전이 되면 저장이 끊기고 제로세팅이 되기도 한다. 전에도 1층에 살던 사람들의 도난이 종종 있어왔다는 말에, 나름 심증은 갔지만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내가 조심하며 감당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 우리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와, CCTV를 제어하며 들어올 수 있는 사람.

아파트 보조키는 관리인이 가지고 있다.


결정적으론 코이카에서 주관하는 안전교육에 참여하고 돌아온 후의 감정적 요동이었다.

단원들은 안전상 오토바이 모토 탑승이 금지라는 방침을 전해 들었다.

해당 기관에 자가용이 없으면 애당초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들렸다.

안전을 위해 도보로 다니거나 택시로 움직이라는 소린데 정해진 활동비를 값비싼 택시비로 다 소진할 수는 없으니 모든 생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당장 한인교회 예배와 장을 보기 위해 나서는 경우와 시내 어디를 나간다 치면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를 어기고 모토라도 타는 날에, 우연히 보고라도 들어가면 페널티를 각오하라는 것이었다.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각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른 차원으로 생각하고 해소할 수도 있지만, 함께 나누고 소통하며 어려움을 토로하던 아내와 가족과 교회공동체에서 떠나 있는 나의 상황이 버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외롭고 고독해서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고 대화하며 사는 삶을 다시금 회복하고 싶어서

이 홀로서기의 시간을 갖고자 했지만, 생각만큼 단단하지 못한 나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찬양을 크게 틀어놓고 그동안 흘려보지 못했던 눈물을 쏟아냈다.

한참이 지나자 암담했던 마음에 평안과 고요가 찾아왔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잔잔한 위로와 격려의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작정했지만 더없이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로 인해 강인하게 단련되어야 하는 시간이다.


살면서  홀로 던져질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고독 속에 홀로 서는 개인의 영성과

함께 있을 때의 공동체의 기쁨을

잘 체화하는 시간이 되기를......


거듭 다짐해 본다.



표지: 키갈리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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