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정원의 "시와 산책 "

돈을 지불해서 구입하는 책에 관하여

by 준구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아내가 자그마한 책방을 운영하는 내 친구를 만나면 놀라운 소비가 이뤄진다.

서점 주인장은 아내에게 가장 핫한 책과 트렌드를 소개하고 독서모임에서 나눴던 쟁점과 반응까지 이야기한다. 서가를 가득 매운 책을 다 살펴볼 시간이 없고 하나같이 디자인이 멋진 책 중에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를 때 살가운 설명은 아내의 책 구매 결정에 큰 확신을 준다. 서너 권을 연달아 설명하는 친구의 열의에 아내는 두말 않고

카드를 꺼내어 결재한다. 에세이와 수필 등의 책은 두께가 얇아도 책값은 가볍지 않다. 디자인에 공을 들여 손이 가게 하는 세련미를 담았다. 그 자리에 서서 읽더라도 한 시간이면 족할 책을 아내는 기꺼이 산다. 서점을 운영하는 친구를 배려하는 터라 책은 늘 정가로 샀고 할인을 받는다거나 포인트를 적립하는 일도 없다. 그렇게 구입한 서너 권의 책은 곧 내 출퇴근 길의 동반자다.


메인 진열대에 올려진 책은 얇은 시집에서부터 두꺼운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작은 규모임에도 어린이를 위한 동화까지 진열되어 있다. 서울을 벗어나 능내의 강변을 찾는 가족 손님들은 대동한 자녀를 위한 책소비에 인심이 후한 편이란다.


한정원 작가의 “ 시와 산책”은 그러한 이유로 내 손에 드리웠다. 지하철의 이동 시간이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활자를 읽어내면 2차원의 텍스트가 내 머리로 입력되어 3, 4차원의 시공간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인다.

작가가 느꼈을 상실과 좌절 부끄러움과 절망, 반대 편의 상큼한 싱그러움이 내게로 전이된다.

그때 비로소 비용을 지불하고 사서 읽는 책의 가치와 깊이를 공감하며 인정하게 된다. 한편으론 나도 글을 쓰긴 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서 구매하는 문장이 되는지 다시 곱씹어본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지점이 있었다.


좋은 문장과 글은 텍스트가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고 작가의 표현에 마음을 움직인다. 그 표현의 맛과 향은 달콤하고, 감정은 애잔해서 작가가 느끼는 동일한 좌절과 환희가 독자에게 고스란히 공감으로 전해진다.

나의 문장엔 공감과 교감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나는 때론 방송용 내레이션을 쓴다. 그런 때면 영상이 시각적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내용을 설명하려 애쓴다. 문학은 활자에 의존하는 것이기에 그 텍스트에 시각적 형상화와 문장의 수려함이 녹아져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나의 이해와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아내 덕에 나의 취향과 구매력으론 굳이 사서 읽으려 하지 않는 분야의 문학을 접한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보석 같은 작가들이 즐비하고 찬란한 문장을 잉태하기 위한 산고의 노력이 끊임없음을 인지한다.


내가 만드는 영상과 글이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를 내포하려면 그 얼마나 많은 퇴고의 노력을 거쳐야 하는 건지, 그 과정을 지나면 그렇게 될 수는 있는 건지.


글이 감동을 일으켰고 나의 도달하지 못함으로 좌절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두 건의 총기사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