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에서 걸려 온 전화

화상통화의 반가움

by 준구

저녁 상을 물리고 정신이 몽롱한 채로 TV에 시선을 떨구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페이스톡임을 알리는 요란한 벨소리의 파장은 동공에 힘을 불어넣어 혼미함을 물러가게 했다. 브리즈번에서 걸려온 아들의 전화다.


일요일 아침에 예배드리러 집을 나서기 전 아내가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응답이 없었다. 잠시 후 톡으로 온 문자는 “알바 중, 나중에 연락드릴게요”였는데, 이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모양이다. 화상통화에 비친 아들의 모습은 밝고 윤기가 났다.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서 싸준 도시락으로 늦은 저녁을 먹느라 밥을 씹으며 대화를 나눴다. 전보다 조금 넓은 룸으로 옮긴 기숙사의 환경이 다소 쾌적해 보였다. 전에는 이층침대와 각자의 책상이 놓여있던 콤팩트한 구조였다면 이젠 단층침대가 나란히 이어지고 그 뒤로 긴 데스크가 배치된 비교적 여유로워진 형태다. 책상옆으로 바깥으로 통하는 베란다가 붙어서 탁 트인 잔디 너머로 시내 전경이 펼쳐졌다. 5층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마음을 한껏 편안하게 만들었다.


주일이면 한인교회를 가거나 현지인 예배당을 찾아가 교재도 나누고 안식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좋으련만 아들은 알바를 택했다. 시급이 한국의 3배에 달하고 주말이면 평일 시급보다 더 높게 쳐줄 뿐 아니라 중식도 풍성하게 제공하고 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저녁 도시락까지 챙겨주니, 부모의 사정을 헤아리는 아들의 선택으로는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허겁지겁 밥을 넘기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대견해 보였다.

지난번 통화할 때는 좀 우울해 보이는 기색이 있어서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기숙사 룸을 옮기면서 기존의 룸메이트였던 대만 간호전공 형과 떨어지게 된 아쉬움과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살짝 이르게 이성에게 고백한 섣부른 감정이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새로 룸메이트가 된 인도계 학생과는 아직 몇 마디도 못 나눠 본 상태라고 했다. 서로 바빠서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 친해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단다.


“사실 그 이성친구는 같은 한국인처럼 문화와 식성, 대화의 티키타카 등이 잘 맞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친구 중 하나면 좋은 관계인데 제가 조급하게 누군가와 특별한 사귐을 갖으려 했나 봐요. 외롭다고 생각해서 조급했던 거 같아요.”


친하게 지내는 일본인 친구의 기숙사에 놀러 가서 과제도 하고 잠도 자는 모양이었다. 그 친구의 숙소는 부대시설이 훨씬 좋아서 짐에서 운동할 맛이 난다며 몸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이젠 제법 대견한 소리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아들이 새삼스러웠다. 대학을 갈 거라는 기대감을 애초에 갖지 않도록 만들었던 아들에게 지난 몇 년 간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본인의 입으로 이젠 웃으며 너스레 떨듯 “ 질풍노도의 시간을 잘 견뎌 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시간이 다가오다니. 아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질풍노도”라는 말에 우리 부부는 그만 웃음이 빵 터져 버렸다.

본인도 그 주체하지 못했던 감정의 파고와 앞이 보이지 않는 막연한 좌절을 잘 버티고 무언가의 간절함 끝에 거기 서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편안하고 친절한 사람이 자기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혹시라도 그런 이성이 나타나면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성급함으로 이어져 관계를 힘들게 만들었음을 인지했다.

“저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하고 친절하게 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나 스스로를 편안해하고 잘 이해하며 대할 때 표정과 관계도 온화해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누군가에게 고백해보고, 고백도 받아보고, 멋지게 거절도 해보고, 우회적인 거부도 당하면서 한 인격이 자라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같이 지낼 때는 특별한 일이 아닌 경우엔 10분의 대화를 이어가기도 어려웠는데, 서로 떨어져 있고 보니 화상 통화가 금방 한 시간을 넘긴다. 일상의 안부를 묻는 요식행위에도 깊은 정이 오갈 수 있음을 실감한다.


학기가 마쳐가니 몇 과목의 성적이 메일로 발송된 모양이다. 처음 걱정하고 긴장했던 것에 비하면 여러모로 꼼꼼히 준비하고 애쓴 에세이와 발표에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았다. 방금 도착했다는 메일을 열어보며 스스로도 기쁘고 놀라워하는 모습에 우리는 대견한 박수로 화답했다.

'그냥 일반학교를 보냈어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했을 아이였는데, 부모의 결정으로 대안학교를 보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대안학교를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 성찰하고 집중하는 에너지를 갖게 된 것인지?' 아리송한 질문을 서로에게 던져 본다.


집에 두고 간 노트북과 카메라 인라인 옷가지 등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해외배송 값이 많이 나올 테니 안 보내줘도 괜찮다고 한다.

"마음이야 우리가 직접 가서 전해주면 좋겠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으니 최소한 우편으로나마 보내줘야지, 비용 걱정은 하지 말고 성실하게 배움을 이어나가렴."


세상 좋아져서 서로 얼굴 보며 대화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예전이라면 전화세 많이 나온다며 국제전화로 길게 대화하는 건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공부만 해도 현지 애들을 따라가기 어려울 텐데, 시간을 내어 알바를 감당하는 너의 자세에서 아빠도 많은 걸 배운다. 서로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내면 좋겠다.

만약 장학금을 타게 된다면 주일에 일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대신에, 영과 육의 안식을 취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의 상황과 처지를 아시는 이께서 돌보시고 또한 그 길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할 수밖에.


오랜만에 통화해서 너무 반가웠고 즐거웠다. 잘 쉬고 푹 자거라. 사랑한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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