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길에 오르는 아들을 배웅했다
내가 입국하던 날 아들은 유학길에 올랐다. 여차하면 얼굴도 못 보고 작별할 판이었는데 그나마 들어오고 나가는 비행기 시간 차이로 여유가 생겨 아들을 공항에서 배웅할 수 있었다. 케냐에서 인천공항으로 막 착륙한 시간은 16시가량이었고 아들은 22시 경의 브리즈번행 비행기라 마음이 급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긴 통로를 걸어 나와 방역신고서를 제출하고 입국신고 부스에서 자동으로 수속을 마쳤다. 탁송화물을 찾느라 컨베이어벨트 주변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무심하게 짐을 뱉어내는 하역장의 케리어를 주시하며 가방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이럴 때면 표딱지를 쥐고 있는 손 앞으로 짐이 자동으로 와서 멈춰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사람들의 눈에도 간절함과 초조함이 묻어 있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모든 것이 신속하고 정확한 공항 시스템에 감사하면서 카트에 한가득 실은 짐을 밀고 다시 출국장인 3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주함으로 쫓기는 마음이었지만 입출국 모두 인천공항 1 터미널인 것이 다행이라 위로하며 움직였다. 출국장이 멀리 떨어진 2 터미널이었더라면 피곤에 전 몸과 마음에 조바심이 더해져 한껏 부대꼈을 것이다.
멀리 서 있었지만,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밟느라 긴 줄에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은 환하고 밝아 보였다. 먼 나라로 떠나서 공부하며 홀로 서야 하는 아들은 스스로 의연하게 짐을 싸고 필요한 물건을 준비했다. 공교롭게도 아들의 출국에 앞서 나의 출장 스케줄이 잡혀 마지막까지 가방을 꾸리는 일에 신경을 써줄 수가 없었다. 날짜가 겹치지만 않았어도 물건을 챙기고 짐을 꾸리며 공항라이딩까지의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을 것인데 내가 신경 쓰지 못한 만큼 아내와 누군가의 손을 빌렸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씀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아들은 홈스테이를 통해 식생활을 해결하고 싶어 했지만 학교 가까운 곳에는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혹시 있다 손 치더라도 입주 가능한 날짜가 안 맞고 식사 옵션이 붙으면 가격은 더욱 올라갔다. 개강은 다가오는데 거쳐를 확정하지 못하다 최종적으로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학생기숙사로 정했다. 학교와 가까운 시내의 기숙사는 아파트형태로 주방과 화장실을 한 공간 안에 갖추었고 실내 수영장 등 편의시설로 편리했지만 렌트비가 높았다. 반면에 시내 외곽의 기숙사는 방에 투베드와 책상이 놓여있고 주방과 화장실 샤워의 모든 시설은 공용공간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시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아들은 현실을 반영해 외곽의 기숙사로 숙소를 정했다. 방의 크기와 발코니의 여부에 따라 비용이 달랐지만 방 사이즈도 비교적 저렴한 룸을 골랐다. 어쩌면 숙소가 정해져 잘 곳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일단의 안도를 느꼈을지 모른다.
그는 케리어 하나를 부치고 조그만 사이즈는 기내에 들고 들어가는데, 둘러멘 가방에도 중량을 넘기지 않고 짐을 나누느라 이래저래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당장 도착하자마자 음식을 해 먹어야 하는데, 정성스럽게 뽁뽁이 포장까지 해 두었던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을 대거 집에 꺼내놓았다고 했다. 유튜브 어딘가에서 보니 호주 입국 시 한국 음식 중 일부가 반입금지 품목에 걸려 벌금을 물었다는 미확인 정보에 겁을 먹고 의심되는 품목을 다 뺏다는 것이다. 아내는 당장에 먹어야 할 햇반이랑 1회용 찌개류 등을 챙겨줬는데 이것마저도 짐에서 제외했으니 도착해서 당장 어떡할지 걱정이다. 나라도 같이 있었더라면 아들을 설득해서라도 가져가도 무방하다고 말했을 텐데, 한편으론 한인사회도 크고 한인마트도 있으니 크게 염려치 않기로 맘먹는다.
공항에서 저녁을 먹이는데 어쩜 이 한식이 그곳에 가면 한동안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 될 거라는 생각에 평소 보다 반찬을 오래 씹으며 음미했다. 일상에선 크게 의미를 두지 않던 김치와 된장 고추장이 얼마난 진한 향수를 일으키는 고향의 맛인지 막상 떠나려니 벌써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작별의 순간이 임박하자 아이의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같이 배웅을 나온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는 의연했는데 출국장 앞에서 엄마 아빠 앞에 섰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왈칵 감정이 올라와 목이 메어왔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를 혼자 가야 했고 스스로 알아서 오리엔테이션과 입학절차를 밟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학교 다니며 독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스스로 암담했을 만큼 같이 따라가 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도 안쓰럽기는 매 한 가지다.
아들을 들여보내며 마지막으로 기도해 주는데, 함께 동행한 목사님과 선교사님은 극구 사양하며 아버지인 나에게 그 의미를 부여케 한다.
“새로운 장에 들어서는 아이를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성령님이 친이 그 아이의 친구가 되어 주셔서 인도해 주시고 때때로 지혜를 주셔서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들은 이방인으로서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고 언어와 생활 모든 면에서 현지에 녹아들어야만 한다.
멀어지는 아이의 뒤 모습에 손을 흔들어 격려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호주와 한국은 시차가 한 시간밖에 안 나서 거의 동시간대로 생활하니 연락이 용이하다. 더구나 카톡이나 인스타가 있으니 SNS를 통해서도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보낸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주말에 아내는 참아왔던 전화를 걸어 아들과 대화를 나눴다.
아이는 들어가는 날 같은 비행 편으로 호주에 입국하는 유투버를 만났다고 했다. 자기보다 어린데 또래 보다 일찍 대학에 진학해서 당차게 자기 삶을 꾸려갈 계획을 가진 여학생이란다. 혼자 가면서도 전혀 주눅 들거나 염려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며 내심 놀라워했다. 꿈이 크고 구체적이었다는 느낌까지 덧붙였다.
아들은 창가 자리 중간에 끼인 탓에 양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누며 목적지까지 갔단다. 바로 옆에는 나이 드신 한국 할머니가 호주에 사는 딸을 보러 가는 길인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서 입국하고 짐을 찾는 것을 도와드렸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따님은 자신의 엄마를 도와준 청년에게 고마움을 표한다고 아들의 짐을 자신의 차에 싣고 기숙사까지 태워 주었다.
만약 옆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여행은 지루했을 것이고 이런 행운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낯선 공항에 내려 어디로 가야 할 줄 모르면서도 아들은 택시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우버를 깔고 갔으니 우버를 부를 법도 한데 그 애는 그걸 거부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내리며 무거운 짐을 끌고 기숙사를 찾아 들어갔을 것이다. 대안학교에서 익힌 생활 습관과 태도는 때때로 부모조차 당황스럽게 만드는 완고한 원칙들이 존재하는데,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다. 소비를 지양하고 가급적 아끼려는 근검이 마치 나의 부모세대를 보는 것만 같다.
도착한 첫날은 이불이 없어 홑이불을 덮고 잤다고 했다. 입주자가 구입해서 들어온다는 사실은 뒤늦게 안 탓이다. 한국과 전력이 달라서 현지에서 구입하겠다는 밥솥은 어디서 구입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누룽지를 불려서 끼니를 해결했단다. 대만출신 룸메이트 형이 별 준비 없이 호주에 온 아이가 가여워 보였는지, 시내로 데리고 나가 투어를 시켜주면서 한국식당에서 밥을 사주고 자신이 쓰던 밥솥을 사용하라며 아들에게 줬단다. 그 형은 새로운 룸메이트가 중국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는 간호학전공 4학년이란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향한 따스한 성품을 지닌 학생이고, 틈틈이 일을 하면서 집에 손을 벌리지 않고 공부한 마지막 학기 졸업생이란다. 일자리를 얻어 호주에 정착하려는 모양인데 아들은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만나며 삶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었다. 아들은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알아서 카레나 스파게티를 만들면 룸메이트 형 거까지 준비해서 나눠 먹으며 친분을 쌓아가고 있단다.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며 분위기를 파악했고 수업 과목 선택도 끝냈는데, 몇 과목은 날짜와 요일을 다시 확인해서 재조정해얄 것 같다고 한다. 학점도 고려하고 나중에 영주권 신청에 유리한 분야를 고려하면 전공을 바꿀 수도 있어서 학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는 둥 모호한 신입생 티를 내는 발언을 한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삶은 오롯이 너의 몫이고 책임이니 부모를 일일이 납득시킬 필요는 없다. 시행착오를 겪어도 네가 감당할 일이고, 군대의 시기를 정하는 것도 너의 결정인 셈이다. 부모는 다만 너를 격려하고 도울뿐이지 삶의 주도는 전적으로 너 자신에게 있다.
낯설고 익숙지 않을 터이니 헬퍼와 선생님, 교수와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묻고 대안을 찾아가길 빈다.
너의 길을 비추실 이에게 나의 길도 의뢰한다.
너의 삶은 나의 삶과도 서로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