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벌세우던 모습이 생경했다

1970년대 풍경 – 경범죄 벌서기

by 준구

부모님은 수유동의 왕복 6차선 큰 길가에서 미곡상을 하셨다. 자동차 도로는 시내 중심부에서 의정부로 이어지는 길로 상당히 넓었고 인도 폭도 여유로웠다. 길을 건너려면 교통신호가 달린 횡단보도를 이용하거나 유난히 가파르고 높았던 육교를 건너야 했다. 육교는 일단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힘겨움이 있었고 어린 나이네 올라 선 육교 상부에서 아래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를 바라볼 때면 아찔한 현기증 같은 무서움이 뒤따랐다. 아이는 어려서 두려웠고 노인은 버거워서 불편했던 게 육교였다.


어느 날 어린 나의 눈에도 생경하게 우리 가게 앞 자그마한 공간을 쌀가마를 둘렀던 새끼줄을 길게 늘어뜨려 네모난 공간을 만들었다. 보도블록 위에 분필로 네모를 긋더니 각 모서리에 나무 말뚝을 세워 그 각목을 발목 높이 위쯤에 새끼줄로 이어 격리공간을 만들었다. 이런 공간을 만든 이는 파란색 제복에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입에는 호루라기를 걸치고 한 손에는 적당한 길이의 곤봉을 쥔 경찰이었다.

도대체 어떤 용도로 사용하려고 아이들 오징어게임 그림판처럼 저런 장치를 만들었을까 의아해했는데 그 궁금증은 이내 해소되었다. 그 경찰관들은 골목에 잠시 몸을 피하 듯 숨어 있다가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즉시 호루라기를 불며 경범죄자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잡힌 어른들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선처를 부탁했지만 경찰은 여지없이 이들을 길가에 임시로 만든 격리 공간에 집어넣었다. 열 평이 채 될까 싶은 공간(계도서)은 금방 발 디딜 틈 없이 중년의 남녀 어른들로 가득 찼다. 가만 살펴보니 무단횡단만 잡아들인 것은 아닌 듯 보였다. 거리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거나 침을 퉤퉤 뱉는 사람과 껌과 담배꽁초를 보도블록에 탁탁 뱉고 비비는 사람도 무작위로 잡는 것 같았다.


어떤 행인들은 멀찌감치서 경찰의 단속을 피해 오던 길을 뒤돌아 가거나 골목으로 들어가 다른 길로 가버렸다. 교복을 입은 중고생의 모습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고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과 장바구니를 손에 든 아줌마의 얼굴이 인상에 남는다. 어쩌면 경찰관의 눈에 삐딱하게 비친 남성장발족이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그 무리에 섞여 30여분 정도 공개 창피를 당한 후 주의를 받고 풀려나는 것 같았다. 3~4십 분의 짧은 구류에도 그 공간은 금방 사람들로 채워졌다 다시 비워지기를 반복했다.


사실 새끼줄로 안과 밖을 구분한 정도라서 뛰쳐 도망갈 법도 한데 그런 어른들은 없었다. 더러 꾀를 내는 어른은 그 공간에 이어 있는 우리 가게로 슬쩍 넘어와 화장실이 급한 양 화장실을 찾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에 뒷문으로 줄행랑을 치곤 했다. 물론 나는 그런 어른들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차리고 화장실에서 뒷문으로 나가는 경로를 손짓으로 알려주곤 했다. 그건 마치 얼음 땡 놀이를 하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내가 땡을 외치며 얼음에 갇힌 갈급한 동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 같은 쾌감을 느끼게 했다. 어떤 분들은 목이 말라서, 서 있었더니 땀을 많이 흘러서 물을 달라거나 씻고 싶다며 가게를 통해 가정집 안에 놓인 펌프에서 목을 축이며 더위를 식혔다. 큰길에서 상점을 하고 점포 안쪽으로 살림집이 위치하다 보니 오가는 행인들이 화장실을 해결하고 물을 얻어 마시곤 하던 시절이었다.


점포의 문은 각목으로 모서리 틀을 잡고 그 위에 양철을 두른 다다미였다. 홈을 따라 문짝을 끼웠다 떼었다 하는 방식으로 문짝 4장을 연이어 두루면 안과 밖이 차단된다. 통금을 알리는 밤 12시가 다가오면 미쳐 집으로 귀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경찰의 통금단속을 피하려고 함석문을 두드려 도움을 청하곤 했다. 잠시 들여보내 달라는 호소였다. 그럴 때면 함석문 아래 낮게 달린 조그마한 출입문으로 사람들을 들이곤 했었다. 잠시 머물다 가거나 뒷문으로 나가 골목길로 조심히 가라고 안내해 줬다. 물론 그때 어렸던 내가 깨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버지나 형 누나들이 그랬던 걸 잠결에서 종종 들었었다.


그때 우리는 수유동 세일극장 건너편에 살았고 화원과 구둣방 양복점 레코드 가게가 연이어 있는 상가였고 뱀탕집과 구멍가게 연탄집이 성황을 이루던 시기였다. 쌀가게는 현금 유동성이 좋아서 지방에서 수매한 쌀가마니가 대거 도매로 들어오는 날이면 가족들은 돈다발을 세어 묶느라 밤을 지새울 지경이었는데, 동시에 의료시스템과 보험체계가 허술한 때이니 집안 어른들 병시중에 돈이 술술 새어 나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1970년대의 초등 시절을 더듬는 것은 그 자체가 한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역사이고 그 시대의 반영이란 생각 때문이다. 강제와 통제를 벗고 자율과 자유를 갈망했던 시대.


이제 2026년을 맞았다. 그때의 어린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주위의 상황은 여전히 생경한 것들이 있다.

격변의 시간을 살아내는 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vRWE4nr_fU 7~8십년대 무단횡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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