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의 사진 속에서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벗의 부음을 한 참 뒤에 들었다.

by 준구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고 인천의 장례식장을 찾아가 문상했다. 상주는 대학동기이자 인천 토박이라 지역 연고로 맺어진 선후배와 직장 동료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나는 그의 초중등 동창이며 나와는 방송을 하며 친하게 지냈던 00이 다녀갔는지 궁금했다. 00은 인천의 방송사에서 일할 때 우리 팀의 후임으로 들어와서 한동안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서로가 얽힌 인연임을 알게 된 것은 페북에 댓글을 달면서 나의 친구가 한 다리 건너서 그의 친구란 사실에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런 내막이 있는 사이라 오랜만에 셋이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자체가 재미난 기대감을 주었다. 상주인 동기와도 몇 년 만에 만나는 셈인데 그 친구랑은 5~6년 전에 송도에서 만나 식사를 나눴으니 못 본 지 한참이었다.

“ 00은 다녀갔어 아님 언제 온데”

“ 어!” 친구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잠시 주춤하다 나를 응시한다.

“ 00이 4~5년 전에 죽었어!”

“ 뭐! 아니 어쩌다? 기껏해야 5십 초반이었을 텐데!”

“ 뇌종양이 급성으로 진행돼서 손도 못써보고 3달 만에 돌아갔어”


나는 할 말을 잃고 눈만 말똥거리면서 잠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충격파가 커서 바로 수용하기 어려웠다. 집안도 부유하고 성격도 낙천적이라 일할 때도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늘 여유를 잃지 않았던 친구였는데……. 종종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아주고 근황을 올리곤 했었는데 뜸하다 싶더니, 그 이유가 죽음이었다니, 좀 허망하면서 안타까웠다.

그와의 마지막은 5년 전쯤 인천 송도에서였다. 인천에 나온 김에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연락했을 때, 그는 자신의 30년 단골 경양식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와는 한 살 차이고 내가 선임이었기에 늘 깍뜻하게 대했다. 인천 토박이라 인하대 부근의 대폿집과 맛집을 두루 섭렵해서 건수만 생기면 막걸릿집과 식당으로 이끌곤 했다.

약사인 부모님 덕에 부유하게 자랐고 일찌감치 차를 몰았으며 정원의 넓은 잔디를 깎을 때면 온몸이 피곤하다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던 낙천주의자였다. 고되고 열받는 일이 생길 때도 은근히 부유함 속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으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돌파해 가는 털털한 사람이었다.


한때는 가수로 이름을 날렸고, 유능하게 직장생활을 마치고 다시 가요계에 컴백한 그의 자형의 콘서트 영상이 올라와서 그의 근황이 더욱 궁금했던 터였다. 조문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혹시라도 페이스북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아뿔싸! 디지털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4년 전에 멈춰 선 기록의 흔적 속에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아는 친구들은 그의 안식을 염원하는 글을 남겼고, 생사를 알지 못하는 지인은 그의 생일날 축하의 글을 남겨 놓았다. 주인은 떠났는데 방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니 어찌하는 게 바람직한 건지.


그가 그의 아내와 자녀에게 기울였던 사랑의 손길과 그 부모님과 정겨웠던 시절의 기록들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한동안 연락 못하고 지낸 것뿐인데, 생과 사의 갈림에 놓이다니.


최근엔 문상의 패턴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의 부모상을 연락받으면 전 같으면 동기나 선후배가 퇴근 후에 당연히 조문한다는 사명으로, 서로 시간을 맞춰 얼굴을 볼 겸 모이려고 애썼는데 요즘엔 분위기가 다르다. 예전만큼의 열정으로 애써 모이려 하지 않고 조문하러 가더라도 각자의 상황에 맞추느라 만나기 어렵다. 때론 부의만을 표하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기타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늘 미소 짓는 얼굴에 여유와 넉넉함이 풍기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집안이 풍족한 편이었는데도 급성으로 온 종양에 손쓸 틈이 없었다는 데 큰 애석함이 인다.

더구나 부모님은 생존해 계신 듯 하니 더 아리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면 대포 한 사발에 파전과 통오징어를 막 삶아서 내놓는 노포에 앉아 삶의 곤함을 날려 보내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얼큰한 기분으로 짠내 나는 연안부두를 거닐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었다.

그런 기회를 놓치고야 말았군.


친구! 편히 쉬게나!

그곳에서 좋아하던 음악 들으며 고통 없는 곳에서 평안히 잘 지내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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