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망과 치매의 모호함 사이에서

뇌출혈로 쓰러지다

by 준구

아침에 울린 가정방문 요양보호사의 전화를 받고 아내는 화들짝 놀랐다. 보호사가 장모님 집을 방문해서 벨을 여러 번 눌러도 문을 열어주지 않길래 비번을 누루고 들어갔더니 큰 방에서 쓰러져 계셨다. 의식은 있는 것 같은데 묻는 말에 대답은 못하시고 응급상황인 것은 분명해서 119에 연락하고 기다리면서 아내에게도 급히 알렸다. 아내는 쓰러진 장모님에 놀라 안절부절 울부짖는 소리로 통화하는 보호사를 진정시키며 돌아가는 상황을 물었고 가까운 인근 병원으로의 이송을 부탁했다.


막 출근하려던 아내의 동선은 황급히 바뀌어 병원으로 방향을 틀었고 내가 운전을 하는 사이에 회사에 전화를 걸어 휴가 신청하며 상황을 설명고, 국내와 해외에 흩어져 사는 형제자매에게 엄마의 상황을 알리는 문자와 카톡을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실려온 장모님은 간밤에 뇌출혈을 맞았다. 뇌로 공급되는 한쪽 혈관이 파혈되면서 반대편의 다리에 마비가 온 것이다. 요양보호사가 아침에 일찍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더 늦었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소식을 접했을지 모른다.


응급조치를 받은 후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동으로 옮겨지는 몇 주간의 시간은 가족들의 애간장이 타들어 갔다. 빨리 의식이 돌아오길 바랐고, 누운 상태가 아닌 다시 걸어서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다시 의식을 회복했을 땐 타국에 있는 자식은 귀국해서 곁을 지켰고, 들어올 수 없는 자녀와는 화상통화로 안부를 나눴다.

장모님 자신은 정신을 차려서 자녀들을 알아보았지만 한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걸을 수 없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자유롭게 이웃집에 마실을 다니고 일요일엔 예배당도 가서 먹고 마시며 즐겁게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없음을 수용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가고 싶은데 막상 다리는 한 발짝도 내 디딜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음을 인지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몰랐다. 뇌출혈이 와서 인지에 장애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뇌에 저장된 기억과 현실을 파악하는 인지가 뒤엉켜서 단절과 파편화로 무질서해졌다.

뇌에 저장된 기억과 현실을 파악하는 인지가 뒤엉키고 단절되

간밤에 잘 자고 쉬어 컨디션이 좋은 날엔 분별 있는 대화가 가능했다가 어떤 날엔 기억과 질서가 뒤죽박죽인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사위인 나를 아직 미혼인 처남과 혼돈해서 결혼할 색시를 만났냐고 질문하기도 하고 2~3십 년 전의 일을 엊그제 있었던 사건처럼 말씀하셨다. 나쁘고 안 좋은 기억을 어제 일처럼 너무 생생히 말씀하실 때면 가슴이 덜꺽 무거웠다. 평생을 지배하는 상처와 고통은 무의식 속에도 우리의 뇌리를 지배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렸다.


현재 사시는 동네의 지명을 더듬어 기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자녀들은 반복적으로 기억을 되찾아 가도록 인내 어린 소통을 이어갔다. 종합병원에서 한 달 여 시간을 머물자 전원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디로 모셔야 하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니 집으로 오실 수는 없고, 재활병원을 알아보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연세는 구순에 가까웠고 요양원에 가신다 해도 휠체어 신세는 면한 후의 선택지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재활병원에서는 아침 점심으로 물리치료 시간이 정해져 있어 팔다리에 조금씩 힘이 붙기 시작했다. 24시간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병원비에 얹힌 간병비의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십시일반 자녀들이 마음과 물질을 모은다 해도 얼마까지 길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돈도 돈이지만 긴 시간 동안 온전히 환자를 돌봐줄 간병인을 만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간병인도 사람인데 환자의 비유를 맞춰가며 대소변을 갈아주고, 때론 잠을 못 자가며 긴 밤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맡기는 가족의 입장에서는 뭐라도 하나 더 신경 써주고 섬겨야 하는 대상이다.


장모님의 다리는 야위었지만 재활 치료 덕에 몸을 지탱하고 서서 한 발씩 내딛는 운동을 이어갔다. 병행한 ‘노인인지기능검사’에 의하면 인지와 기억력 영역의 수치는 기준 이하로 현저하게 마이너스에 기울어 있었다.

임상심리전문가는 현재 상황을 치매의 진행으로 보았고, 뇌혈관의사는 섬망이라 진단해서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 했다. 검사지는 부정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여준 것이지만 가족의 입장에선 혈관이 터지고서 다시 마르면서 섬망이 왔을 것이니 좀 더 지켜보자는 쪽에서 위안과 희망을 붙잡았다.

사람의 두뇌가 기발하고 뛰어나서 인공지능과 첨단 AI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뇌에 전달되는 혈액이 차단된 이유 하나 때문에 신경회로가 엉킬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두렵다.


몸과 정신이 쇠하지 않고 강건하게 노년을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 것인지.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녀를 부양하는 50대의 무게를 잘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얼마나 건강해야 하는지. 자녀에게 동일한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는 또 얼마나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가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오늘만큼은 밥상에서 꼭꼭 밥을 씹고 서로 대화하면서 좀 더 여유로운 나눔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주말엔 둘레길 걷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장모님 역시, 걸걸한 목청을 장착한 총명한 눈치 싸움과 계산으로 자녀와의 고스톱 판을 다시금 휩쓰실 수 있기를 기원한다.




섬망 :섬망은 의식과 지남력(날짜, 장소,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기복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질환입니다. 주의력 저하, 언어력 저하 등 인지 기능 전반의 장애와 정신병적 장애가 나타납니다. 섬망은 혼돈(confusion)과 비슷하지만, 과다행동(안절부절못함, 잠을 안 잠, 소리 지름, 주사기를 빼냄)과 생생한 환각, 초조함, 떨림 등이 자주 나타납니다. 섬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갑자기 발생합니다.


치매와 섬망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지속성'입니다. 섬망의 경우 증상이 수일 이내에 급격히 발생하며, 원인이 교정되면 수일 이내에 호전됩니다. 하루 동안에도 증상이 심하게 변동하는 편입니다. 이에 비해 퇴행성 치매는 수개월에 걸쳐 증상이 생기며, 증상의 심각성도 비교적 큰 변동 없이 일정한 편입니다. - 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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