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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행사를 중계하며 들었던 생각

월드비전 회장 이취임식

by 준구

방송사에서 일할 때 피디는 중계차나 부조정실에서 눈과 입으로 작업했다.

여러 모니터를 보며 카메라 감독에게 적당한 무빙과 사이즈를 요구했고 나의 주문은

기술감독이 비디오 제어 패널로 조작해 주었다.

음악의 스타트를 말하고 출연자에게 Q 사인을 주고 자막과 타이틀의 인 아웃을 외칠 때면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스텝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열심을 다하고 그 열정의 강약을 조절하며 절정을

향해서 나아가는 모습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스튜디오 안과 부조정실의 하모니 속에서 하나의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그만 모니터 안으로 다 들어온 4대의 카메라와 영상 플레이 소스를 보며

나 홀로 콜을 외친다. 원 카메라 스탠바이 컷, 투 카메라 스탠바이 디졸브......

나의 외침을 수행해 주는 것은 바로 나의 열 손가락.

두 사람이 나눠서 작업하던 일이 한 사람의 몫으로 바뀌었다.

기술의 발전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인해 장비는 작아지고 실용성이 높아졌다.

방송용 중계차가 아니더라도 현장을 잘 커버해서 송출할 수 있는 장비가 무궁무진해졌다.

방송사의 모든 인력이 다 붙지 않아도 감당할 수 있고, 조그만 제작사로서는 어떡하든 작은 제작비로도

수행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모니터와 콘트롤 패널

나의 두 눈과 입에 양손을 더하니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역할을 감당케 된다.

기술감독의 역할까지 피디가 홀로 맡는다.

카메라도 리모트를 사용하면 카메라 감독이 필요치 않게 된다.

AI 인공지능의 발전, 인건비 절감 차원의 노동강도 심화, 경영합리화를 운운할수록 사람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라떼를 그리워할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지게 된다.

변화된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선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숙명일 것이다.

내가 일하는 영역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생산성과 경영합리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제 사람은 기계와 인공지능을 절대 능가할 수 없다.

일자리가 있어야 일도 하고 소득이 생겨서 소비도 하는데, 이런 선순환의

구조가 파괴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심각한 문제에 당면할 것이다.

‘더불어 함께 나누며 힘써 일해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래간만에 나의 온몸이 바쁘게 움직이며 긴장했다.

혼자서 모니터를 응시하고 토크 백으로 콜 하며 손가락으로 자판 위를 오갔다.

마치 혼자서 게임에 몰두하는 것처럼.

행사를 마치고 한 숨을 돌린다.

커피가 생각나고 따뜻한 향취에 젖어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월드비전의 실내행사는 잘 마쳤지만, 월드비전과는 어려운 나라를 함께 누빌 때가 제일 좋았다.


올해는 제발 현지에 나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황토 흙 폴폴 날리는 아프리카의 먼지와 강렬한 태양과 커피가 어울어진 무대에서 연출하고 싶다.

비행기 타서 날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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