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 이연작가
<이것이 나의 진심이었다. 고흐를 좋아해서 도서관 한편 미술 코너에 있던 고흐 책을 전부 다 읽었던 나인데, 그처럼 되는 것은 죽도록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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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을 즐겨라. 이 말은, 언젠가는 내가 작가가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주문인 동시에 지금 내가 자유의 몸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문장을 읽은 후 나는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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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이기지 못한 기분을 느꼈다. 조금 더 나이가 든 후 이 기분의 정체를 알았다. 이것은 열등감이었다. 나는 그림을 전부 팔았지만, 끝이 고른 그 아이의 선은 갖지 못했던 것이다. 열등감의 심부에는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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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깊은 사유는 자아를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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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릴 대상을 정하고, 필통을 뒤적이며 선에 어울리는 재료를 찾는다. 아니면 순서를 바꿔서 우연히 뽑아 든 재료에 맞는 대상을 찾기도 한다. 동일한 대상을 다른 재료와 선으로 표현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무엇이든 의도가 분명하면 거기에 따른 무드가 생긴다. 정답은 없고 전부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니 어떤 느낌을 보여주고 싶은지 먼저 간단히 생각해 보자. 틈틈이 그림에 생각을 담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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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표현은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적절히 섞였을 때 비로소 리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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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조에 일관성을 갖고 지속하다 보면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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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은 그게 어떤 형태이든 우리에게 너무도 확실하게 와닿는다. 그렇기 때문에 피하고 싶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사람들의 반응이 대개 몹시 솔직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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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있다고 다독이면서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야 발전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확신만 있으면 정체가 되고, 불확신만 있으면 용기를 잃는다.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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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원하는 일과 남들이 칭찬하는 일의 경계가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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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은 모든 것이 ‘선택’에 달려 있다. 모범생으로 산다는 것은 그 권리를 완전히 타인에게 맡기고도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세뇌하는 일과 같다...나는 자유가 귀한 줄 모르고 안정이라는 말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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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아등바등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은 충족시키면서 살았지만, 언제나 이방인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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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고쳐 달라고 남들에게 말하는 일을 되도록 삼가라. 대신 당신이 봤을 때 좋아 보이는 그림들을 찾아라. 그것들이 왜 좋아 보이는지 이유를 스스로에게 계속 되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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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슬럼프의 생김새나 한번 묘사해 보자. 이 녀석은 몰래 온 손님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아차, 시간만 허비했구나’ 자각하게 된다. 눈을 내려 발밑을 바라보면 두 발이 진흙에 질퍽질퍽 빠져 있다. 이런 때에는 어쩔 도리 없이 단 두 가지의 선택지만 갖게 된다. 진흙에 계속 있는 것과 빠져나오는 것.>
독서와 그림이 나의 오랜 취미니 도서관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바로 뽑아봤다. 드로잉 영상을 본 적이 있던 작가였다. 이런 그림 그리는 사람의 에세이는 만나기 어렵고, 검색해서 찾기조차도 어렵기에 반갑게 읽었다. 책을 고를 여유가 없을 때는 머릿속 리스트에 있는 고전이나 전에 접했던 작가의 책을 읽는데, 오랜만에 짬 내서 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하루동안 컨투어 드로잉을 하며 선생님에게 배웠던 것들과 비슷한 결이다. 신경 쓰지 말고. 꾸준히 하고 싶은 대로.
우연히 운 좋게 찾아서 책을 펼쳤을 뿐인데, 나와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다. 그러면서 고요 속에 과거를 돌아보며 추억하고 위로받는다. 활자를 통해 그때의 고민과 감정이 다시 꺼내져 보듬어지고, 현재의 나를 돌아보며 가끔은 미래의 계획을 재정립하기도 한다. 한없이 차분한데 즐겁다.
나는 항상 시끌벅적한 곳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요즘 부쩍 책들이 나의 균형을 맞춰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