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피로사회>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 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따라서 타자의 부정성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사색적 삶은 보는 법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전제한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의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뭐든지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긍정과잉시대에서 사람들이 피로해지고 정신적으로 병들어가는 이유를 밝힌다.
2cm도 안 되는 얇은 책으로 철학책 치고는 어렵지 않게 간결하게 서술해서 좋다.
(저자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주요 단어들의 느낌이 와 닿아서 그나마 이해하기 쉽다. 문장 구성은 번역체라 처음에는 외국인인 줄 알았지만 그냥 철학교수들의 특징인가 보다)
우울증과 주의력결핍장애 등의 현대정신질환의 원인을 과거와 대비되는 현대사회의 특징, 현대인의 특성을 통해 진단한다.
현대에 부정성이 배제되고 긍정성의 과잉이라는 듣기엔 좋아 보이는 현상이 현대인의 정신을 갉아먹는 원인이라는 점이 나에게는 다른 과거의 철학들이 제시하는 원인보다 훨씬 명쾌하게 느껴졌다.
(하이데거 등 실존주의 철학도 명쾌하게 설명해줄 것 같은데 아직 어렵다)
자기 착취 부분도 좋았다. 나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자기 착취하다가 면역문제도 겹쳐져 병원 약도 들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했으니까.
멀티태스킹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퇴화한 것으로 정의한 점도 와 닿았다. 나도 멀티태스킹을 할 땐 잘하고 뿌듯하지만 그럴 때마다 긴장과 스트레스가 가득했었다. 사실 지금도 멀티 테스킹 중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이미 성격이 되어버렸다.
면역성, 긍정성의 과잉, 성과 주체 등 몇 개 안 되는 간단한 단어들로 구성돼서 다른 철학책과 달리 읽기 편했다.
원인을 멋지게 진단하고서 해결방안은 느림, 휴식 등으로 애매하게 제시했지만, 원인 진단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나중에 책장 만들 때 채울 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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