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이런 기분에 빠지면 나는 길을 잃는다. 내 몸의 껍질만 남아 있고 뇌. 위. 장. 심장 같은 것들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속이 텅 비어버린 상태가 되어버린다. 나를 잃었으니 그건 당연하다. 잘 알고 느꼈던 나의 장점들도 어딘가 사라져 버렸다. 나의 다정함은 무표정으로 변하고 나의 섬세함은 쓸모없어져 버린다. 진실된 미소와 행복은 타버린 나무처럼 허무하게 바스러져 버린다.
잘 보이고 싶을 때 나는 길을 잃는다.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자리에 주저앉아버린다. 사랑받고 싶어 더 다정하게. 친절하게 연극하지만 연극은 진짜가 아니다. 나는 진짜가 아니게 되어버린다. 서른다섯이 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많이 자라나 독립해도 될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순간이 오면 다시 풀이 죽어버린다. 자라나는 건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죽어버리는 건 금방이다. 허무맹랑하지만 정말 그렇다. 한숨을 쉰다. 내쉬는 숨이 도드라진다. 몸속에서 나오는 숨은 꺼멓다.
얼굴의 모든 근육은 힘이 빠져버린다, 눈의 초점은 사라진다. 성질 고약한 이의 얼굴이 되었다. 고약한 얼굴로 나의 과거를 생각한다. 언제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던 나를 떠올린다. 글쎄. 하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곳에 소속되었던 적은 없다. 너는 그런 거 꿈꾸지 마. 누가 나를 막고 내 어깨를 잡아 반대로 훽 돌린다. 어디서 감히. 네가 여길 왜. 어디라고. 같은 말들이 들린다.
마른세수를 한다. 건조한 얼굴과 거친 손바닥이 만난다. 얼굴을 사포로 문지르는 기분이다. 이 기분을 느끼자 나는 진짜 사포로 내 얼굴을 문질러 보고 싶어 진다. 그럼 아주 잠시라도 바닥을 치는 이 기분이 사라질 거 같은데.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길을 걷다가 자해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이해는 문득. 갑자기 찾아온다. 정말이지 나는 나 스스로를 알 수 없다. 사포로 얼굴을 문지르는 상상을 잇는다. 얼굴에는 생채기가 난다. 긁힌 곳이 다시 긁히고 상처는 더 깊어진다. 얼굴은 어느새 피로 가득하다. 얼굴이 아픈지 마음이 아픈지 눈물이 흐르는데 그 눈물은 피를 닦아줘 상처가 하얘지게 만든다. 같은 몸에서 나오는데 어떤 건 빨갛고 어떤 건 투명한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손이 바르르 떨리는 이 기분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버리는 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휴지통 머리를 열고 바로 버릴 수 있는 게 아닐 수 있다. 시간에게 맡겨야 하나. 그냥 흐를 수 있게 둬야 하나. 나를 찾아야 하나. 그럼 나를 찾는 방법은 무엇이며 나를 찾으려면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빠져버린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뫼비우스의 띠는 정말 잘 만들어진 모양이다.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내가 누군지 찾을 수 없겠지만. 나를 조금이라도 찾으면. 1000 피스 퍼즐의 한 조각만큼이라도 찾으면. 그걸 되게 딱딱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렇게 시작해 보자고. 그럼 다른 하나도 찾게 되고. 나머지 두 개. 열여섯 개. 그러다가 완성될 수도 있다고 희망을 가져본다. 이럴 땐 희망 말고는 답이 없다. 희망. 희망. 너무 멀리 가버린 단어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 거리를 좁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