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의 말

by 김은우

일을 두 달 가까이 쉬고 있다. 통장에는 밝히기 부끄러운 돈만 남아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일을 해야 한다. 밥은 먹고 살아야지. 다행히 이력서를 넣는 곳은 거의 다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 얼레벌레 면접을 봤다. 두 곳은 내가 찼고 한 곳은 내가 차였다. 차인 상처는 아팠다. 내가 찬 두 곳도 아팠을까? 나를 놓친 게 아플 만큼 나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을까? 방금도 면접 한 곳을 보고 왔다. 대표도 괜찮고 일도 어렵지 않아보였다. 직원들을 위한 휴게 공간도 말끔했고 출퇴근 시간도 견딜만한 정도였다. 면접 분위기도 좋았으며 회사 측에서 나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걸 알 수도 있었다. 끝내고 나오는 길. 몸에 힘이 빠진다. 걷기 힘든 정도는 아니지만 걷기 싫을 만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스스로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구. 긴장했나보다. 여기서 주저앉아 있거나 우두커니 서 있으면 분명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테니. 그러고 싶진 않아 애쓰며 걷는다.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여기서 일하고 싶은 건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여기서 일하므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생각한다. 근데 얻을 게 많은지 잃을 게 많은지 모르겠다. 도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지금. 두려움으로 인해 정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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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환경에 놓아지는 걸 극도로 불안해한다. 누구나 처음은 힘들다고 하지만 난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누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게 두렵고 누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 두렵다. 행동하는 것이 두렵고 행동하지 못할까봐 두렵다. 결국 숨 쉬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이 두렵다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겁쟁이다. 새 학기. 새 직장. 새 모임. 나를 구역질나게 하는 것들. 이것들 앞에서는 생동하게 살아있던 기대감도 말라버린 꽃이 되어버린다. 처음이 두려울 때마다 내가 살면서 겪은 수없이 많은 처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래. 나는 걱정해왔지만 언제나 잘해왔어. 그래. 막상 겪어 보면 걱정한 것보다. 젠장. 근데 말이다. 이런 건 하나도 도움 되지 않는다. 이딴 거. 두려움 앞에서 이건 이딴 거가 되어버린다. 이딴 건 어차피 과거일 뿐이고 나는 변했다. 나는 더. 더 겁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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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면접이 끝나고 근처 산책을 할 계획이었지만 다리가 곧 말을 듣지 않을 거 같으므로 바로 지하철로 향한다. 터덜 터덜. 생각이 너무 많아 터질 거 같은 머리를 이고 걷는다. 인간의 몸 중에 어디가 제일 무겁다고 했지. 그게 어디든 간에 나는 지금 꽉 찬 생각 때문에 머리가 가장 무거울 것이다. 넘치는 생각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해본다. 아. 사람이 많아서 앉아서 가긴 글렀네. 우와. 저 분과 나만 코트를 입었네. 우리 둘은 남들보다 조금 더 춥겠다. 어. 맞다. 여기는 한강을 지나치지. 아무래도 날이 추워서 오리배가 하나도 떠있지 않구나. 그런데. 저건 뭐지. 갈색 점 하나와 하얀색 점 하나가 강 위에 떠있다. 눈을 찡그려 자세히 보니 오리 두 마리이다.


내 발만 한 오리가 저렇게 큰 한강 위에 둥둥 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한강 한가운데 있는 걸 생각했을 때 나는 너무나 무서울 거 같은데. 수영을 하다가 겁에 질려 포기할 거 같은데. 쟤네들은 꽤나 평온해 보인다. 작은 크기의 강도 아닌데. 쟤네는 그냥 제 할 일이라는 듯 둥둥 떠다닌다. 수면 밑에서는 열심히 헤엄치고 있을지라도 수면 위에서는 부드럽게 움직인다. 클래식 음악이 떠오를 만한 움직임. 너희들은 무섭지도 않느냐고 오리들에게 묻고 싶었다. 엄청 넓은 강을 헤엄치는 게. 땅까지 가려면 오래 다리를 흔들어 가야할 텐데 버겁진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오리들과 대화를 시도해본다.


아. 그래? 어. 그렇구나.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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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오리 말을 할 수 없으니 친절히 여기 써보겠다. 오리들의 답은 명쾌하고 명료했다. 심지어 어떤 오리는 얼마 전까지 나와 상황이 비슷했었다고. 그 오리는 현재 아주 훌륭하고 침착하게 제 일을 해내고 있다고 말해줬다. 큰 강이 무섭지만 헤엄치지 않을 순 없어.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던 오리가 말했다. 건너면 돼. 건너면 끝나. 시간은 흐르고 물도 흐르고 우리는 헤엄을 쳐. 그럼 결국 오리들은 건너편에 와있는 거야. 그게 얼마나 다행이야. 오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최선을 다해 헤엄치며 너를 시간에 맡겨봐. 절대 멈추지 않는 시간이 야속하지만 그게 시간의 장점이기도 해. 시간은 흐르고 이건 다 지나가. 오리는 얘기를 끝내고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갔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오리를 바라본다. 내 발만 한 오리를. 우아한 오리의 수영을. 그리고 큰 한강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제 갈 길을 가는 오리를. 강에 비친 햇빛을 가르며 가는 오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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