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에 들어간다. 주민등록증으로 내가 성인인지 확인한다. 아싸. 귀가 폭발할 듯이 시끄럽다. 어둡기 때문에 더 반짝이는 색색의 조명들이 내 눈을 찌른다. 오늘 음악은 요새 유행하는 걸그룹 노래들. 사실 오늘 뿐만 아니라 이곳은 매일 그렇다. 걸그룹 노래에 맞춰 남자들이 춤을 추고 있다. 아. 얼마 만에 왔던가. 이십 대 초반에 오고 십 년 만에 다시 온 이태원 게이클럽은 과거보다 열 배 더 자극적이다. 사람들의 옷차림. 인테리어. 디제잉. 나는 이것들에 눈을 뜨고 금방 적응한다. 맥주. 위스키. 롱티. 하이볼. 마신다. 마신다. 마신다. 앞이 또렷하게 보였다가 뇌 속에 지진이 난 것처럼 이내 흔들린다. 이걸 몇 번 반복하다가 정신을 차려야 넘어지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머리를 세게 흔들어 술을 이기려 한다. 저기 민소매를 입은 남자가 나를 본다. 저기 저기서는 흰 바지를 입은 남자가 나를 본다. 나는 분명한 시선을 느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추던 춤을 마저 춘다. 내 춤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건 나를 위한 춤이다. 나를 위한 춤을 추어야만 나는 살아남는다.
나는 깨어있는 시간 동안 내 내핵인 정체성을 숨기려 애쓴다. 표정을 숨기고 하고 싶은 얘기를 숨기고 말투를 숨기고 이상형을 숨기고. 내 삶의 반 이상은 거짓이었으므로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건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다. 가끔은 침을 퉤 하고 뱉으며 저 게이예요. 세상 사람들 제가 말이에요. 게이예요. 소리치고 싶지만 난 그저 침을 꿀꺽 삼킨다. 누가 무슨 말을 던질지 모르는 나는 언제든지 거짓말할 준비를 해야 한다. 때문에 몸에는 은근한 긴장감이 항상 존재한다.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있는. 특히 한국에 있는 많은 성소수자들이 그럴 것이다. 자신의 코어에 있는 정체성을 숨기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모습. 그런 사람들이 여기 지하 일층에 모였다.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소녀시대가 추는 춤을 추며 모여 있다. 일주일 동안 숨기느라 힘들었지. 그래. 추고 마셔. 우리는 여기서 비로소 긴장감을 풀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수가 되는 착각을 한다.
다수가 되는 착각은 꽤나 달다. 두려움이 사라진다. 내 주위에 보이지 않은 이쁜 막이 한 겹 있는 것 같다. 그건 나를 아주 소중하게 보호해 준다. 어떤 무례의 말도. 혐오의 말도 튕겨져 나가게 만든다. 왜냐면 나는 다수니까. 나는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다수니까.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다수니까. 결혼도 하고 신혼부부 대출도 받고 아파트 청약도 받을 수 있는 다수니까. 야호. 근데 이런 착각은 금방 끝이 난다. 클럽에서 나와 택시를 타면 마무리된다.
나는 가끔 클럽에서 다 함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우리는 비슷하니까. 우리는 자주 억압받고 자주 존중받지 못하니까. 성소수자 관련 기사만 봐도 좋은 댓글보다는 나쁜 댓글이 더 많으니까. 우리는 손을 잡고 동그랗게 빙 둘러서 강강술래를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함께해요. 자. 우리 손잡아요. 여기 이태원을 넘어서 저기 신촌에 있는 레즈비언들과도 손을 잡으면 어떨까. 저기 저 트랜스젠더들과도. 아직 벽장 안에 있는 성소수자 모두와도. 우리는 많고 많으니까 서울을 빙 둘러 감쌀 수도 있겠다. 우리는 소수가 아니고 약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자. 우리를 위한 춤. 춤. 어쩌면 그게 우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가을 공기가 더운 날이었다. 가을이지만 늦여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날이었다. 남자친구와 자전거를 탔다. 나보다 앞질러 가던 남자친구는 힘들어. 라고 소리쳤고 나는 그걸 흔들어. 로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 들릴 수 있게 흔들어. 라고 말한 뒤 엉덩이 씰룩 쌜룩거리면서 자전거를 탔다. 연대라는 건 이런 거 아닐까. 힘들어도 흔드는 것. 그래서 흔드는 나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서 옆 사람도 기운을 내 함께 흔드는 것. 아하. 즐겁게 함께 흔들어야 하나보다. 연대하려면. 권리를 찾으려면. 결혼을 하려면 흔들어야 하나보다. 흔들어. 손을 잡고 흔들어. 우리는 흔들면서. 신나게. 지치지 않게 우리 것을 찾아 쟁취해. 강강술래. 강강술래. 우리를 위한 춤. 우리를 위한 춤을 추어야만 우리는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