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명이다. 내 안의 얼마나 많은 내가 사는지. 우울증에 걸린 나. 불안장애를 겪는 나. 강박증에 걸린 나. 강박사고를 하는 나. ADHD가 있는 나. 그 외 기타 등등. 이렇게 많은 이들은 내 안에 내 이름으로 존재한다. 나는 가끔 이들도 진짜 내가 맞는지 궁금하다. 아니면 이들이 없으면 내가 아닐지. 혹은 내가 있긴 한 건지. 사실 이들이 나를 지배한 지 오래되어 나는 사라져 버린 게 아닌지.
정신질환을 앓다 보면 어떤 게 진짜 나인지 헷갈릴 때가 온다. 약을 먹기 전 우울한 상태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약을 먹은 후 우울하지 않은 상태가 나인가. 둘은 얼굴만 같고 마음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누가 진짜 나라고 생각해. 스스로에게 묻지만 답을 내리지 못한다. 이런 질문은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어 다시 우울감에 빠지곤 하는데 그렇담 우울한 내가 진짜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나는 불안할 때마다 하얀색 알약을 먹는다. 병원에서 그러라고 했다. 보통 조금 나아지지만 말 그대로 조금 나아질 뿐 극적인 효과는 없다. 아쉽다. 그럼 덤으로 호흡을 곁들인다. 깊게 들이쉬고 깊게 내쉬고. 깊게 투명한 공기를 들이쉬고 깊게 내 몸속 검은 것들을 내보내고. 그럼 확실히 낫다. 꽤 쓸모 좋은 민간요법이다.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얘들은 절친한 친구인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ADHD의 증상 중에 다른 정신질환이 있고 강박증은 결국 불안을 먹고사는 질환이고 이런 정신질환에 고생하는 나를 보자면 다시 우울감에 빠진다. 너네 나 몰래 짰니. 묻고 싶을 정도로 이들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얘 가면 얘 오고 얘도 오고 얘는 다시 가고 그런다. 경이로운 앙상블. 박수받을 팀플레이.
평생 약을 먹는 게 뭐 어때라는 생각을 했었다. 정신질환에 고통받을 바에야. 내가 나를 무서워할 바에야 평생 약을 먹는 쪽을 선택하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약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아름다운 색을 가진 약들이 추가될 때마다 나는 맞게 걸어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누가 봐도 정신질환처럼 보이는 거 아니야. 하루에 20개가 넘는 약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무서운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이겨보고 싶다. 강박사고는 끔찍하고 불안은 나를 못 견디게 만들지만 그래도 이겨보고 싶다. 같이 잘 지내보자 했더니 이들은 선을 넘고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조종하려 든다. 이 몸은 내 것이고 이 뇌 역시 내 것인데. 나는 더 이상 이들에게 조종석을 내어줄 순 없다.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나는 습관처럼 강박행동을 한다. 나는 나이고 너 또한 나여서 우리는 분리될 수 없다는 듯 군다. 누군가의 소망을 눈앞에서 짓밟는 일. 정말 대담하고 잔혹하다.
주먹을 꽉 쥔다. 너희들을 이기겠다는 다짐. 나를 이기겠다는 선포. 강한 선언. 나는 가진 것이 많다. 이것들을 뺏어갈 순 없다는 걸 나는 나에게. 또 다른 나에게 보여줘야 한다. 춤을 추듯 살 것이다. 나를 위한 춤을 추며 내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악마들을 내보낼 것이다. 팔을 흔들며 너를 내보내고 다리를 흔들면서 너를 내보내고 엉덩이를 흔들며 너도 내보낼 것이다. 게다가 나는 깊게 호흡도 잘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진짜 나만 남겠지. 나는 그제서 진짜 나를 만날 수 있겠지. 그날을 기대한다. 현재는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기에 하지 못하는 일. 진짜 나를 안아주는 일. 그땐 그걸 할 수 있겠지. 나는 나를 만나면 꼭 안아줄 것이다. 너를 못 찾을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말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