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렴 어때

by 김은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죽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이러한 궁금증은 죽기 전에는 절대 풀 수 없을뿐더러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에 죽은 사람에게 전해 들을 수도 없다. 사람들은 자주 알 수 없는 것에 덜컥 겁을 낸다. 때문에 인간은 사후를 궁금해 하지만 두려워하기도 한다. 종교가 발전된 이유 중 하나가 사후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심리 때문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사후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이론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사후가 정말로 궁금하긴 했지만 종교에는 큰 관심이 없는지라 나는 스스로 사후를 상상하곤 했다. 완전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일까. 다시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귀신이 되는 것일까. 아 진짜 궁금한데 그리고 삶이 너무 퍽퍽한데 그냥 한 번 죽어볼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도 해봤다. 아마 죽음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후로 쭉 궁금해했던 인간의 사후. 이제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아무렴 어때.

나는 변했다. 더 깊어졌고 익었다. 냉소적인 면이 많아졌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많아졌다. 친구는 적어졌지만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남았다. 혼자인 걸 여전히 좋아하지만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책과 영화 그리고 클래식을 사랑하게 되었다. 말수는 적어졌지만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내 병을 인정하게 되었다. 우울과 불안과 싸울 준비가 되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체력이 점점 안 좋아지지만 그만큼 운동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삶이 지나가면서 난 점점 변했다. 나이 들어갔다. 성장했다. 낡아간다고 볼 수 있고 자연스러워진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변화들을 느끼니 내 안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걸 느꼈다. 죽기 전까지 100프로로 차오를 수 없다는 예감이 들지만 이것도 아무렴 어때. 어쨌든 차오르고 있으니까. 멈춰있지 않으니까.

걸어가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현재에 존재하는데 사후가 어떻건 뭐가 중요할까. 사후는 사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 일. 일단 현재를 살아야 한다. 충실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내 눈앞에 있는 행복을 생생하게 누리며 그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작은 행복도 귀하기에 우리는 그걸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를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풀. 나무. 낙엽. 강과 사랑과 우정. 난 항상 행복을 느끼는 감각이 둔하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것들은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행복은 어렴풋했기 때문이다. 행복 근육이 약하다는 것. 그것이 항상 나를 괴롭혔다. 근데 아무렴 어때. 어쨌든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고 나는 분명 그 순간에 존재했다.

언어학과는 거리가 멀지만 하나 확신하는 게 있다. 사람은 삶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삶은 살아간다는 것의 줄임말과 같고 삶. 살아감. 사람은 서로 비슷한 모양새를 취한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니 셋은 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인간.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 그러니까 사람이다. 튼튼하고 다채로운 색의 실타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갈수록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예쁜 어떤 것을 만들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뜨개를 하든 물레를 돌리든. 스웨터를 만들어도 좋고 작은 심장 모양의 열쇠고리를 만들어도 좋다. 뭘 만들어도 아무렴 어때. 잘 살아가기를 위해 현재에서 노력하면. 뭐든 아무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