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봄입니다. 올해는 봄이 없을 거라고. 여름과 겨울만 있을 거라고 합니다. 기후 이상일까요. 어쨌든 따뜻하거나 시원하거나가 아니라 덥거나 춥거나일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래도 저는 3월에서 5월을 봄이라고 부를 것이고 9월에서 11월을 가을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봄과 가을이 없어질 거 같거든요. 여름 같은 봄에서도 어떻게든 봄의 흔적은 있을 것이고 겨울 같은 가을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가을의 흔적은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봄은 봄인 것이고 가을은 가을인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전에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 아직 얼마 안 된 탓에 잘한 선택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해야지 뭐 별 수 있습니까. 아직은 한다기보다는 버티는 느낌이 강해요. 확신이 없고 재미도 그저 그렇습니다.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은 바닥입니다. 이 것도 아직 얼마 안 된 탓일 수 있겠죠. 시간이 다 해결해 주겠죠. 우리들의 해결사. 저보다 그를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항상 저와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연기와 트레이너. 둘 다 제 성향에는 맞지 않았어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부딪쳐야 하고 뻔뻔해야 하고 나를 드러내야 하고. 이런 것들이 저를 힘들게 만들었어요. 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드러내기보다 숨기를 더 잘하거든요. 뻔뻔함은 또 어떻고요. 예전부터 친구 재경이와 항상 뻔뻔해지자. 그래야 성공한다. 얘기했지만 아직도 전 그 말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요. 여러 가지로 저와 맞지 않는 일들이었습니다. 근데 정말 웃긴 건요. 전 저와 맞지 않는 이 두 가지에서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을 느꼈다는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 잘 수행한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원하는 대로 풀리는 연기를 한 날. 내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집중한 날. 갑자기 눈물이 줄줄 나던 날들이 생각나고 수업을 잘한다고 느꼈던 날. 몸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감사함을 표시한 분이 계시던 날. 이런저런 선물을 받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저는 꽤 잘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것과 성취감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최근 들어 느낍니다.
아마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시기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미래는 막막해 불안하고 하루하루 재미라곤 없는 시기. 뭘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시기. 길 가다가 넘어지면 왈칵 눈물이 날 거 같은 시기. 스스로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시기. 저의 지금입니다. 제가 그동안 나쁘지 않게 하는 줄 알았던 글쓰기도 어렵습니다. 전 정말 별 거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요. 세상엔 화려하게. 담담하게. 유려하게. 우아하게. 아름답게. 대담하게 쓰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글자로 아름다운 춤을 추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그 사이에서 특별해 보일 자신이 없습니다.
아까 제가 날씨가 아무리 바뀌어도 봄은 봄이고 가을은 가을이라고 했지요. 제 안에서 이것은 불가역적인 것입니다. 또한 제가 연기를 하던 트레이너를 하던 그 외에 어쩌고 저쩌고를 하던 저는 저입니다. 이것 또한 불가역적이죠. 근데 요즘엔 왜 이렇게 제가 저 같지 않죠. 전 이렇게 약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너덜 해졌죠.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시기에는 저를 찾기도 어려운 걸까요. 올해의 봄과 가을처럼 저는 따뜻함과 시원함은 느낄 수 없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이 뇌를 부유하지만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아니다. 정리할 힘이 없습니다. 아마 아무것도 안 되는 시기라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