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 살고 싶은가 보다. 불안은 결국 잘 살고 싶다는 것과 일치하기에 나는 정말 잘 살고 싶은가 보다.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 의사에게 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했다. 우울과 불안은 언제나 내 안에 있지만 그 크기가 줄었다고 느꼈고 심장이 빨리 뛰거나 공황 전 증상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는 의자 바퀴를 굴려 살짝 옆으로 가더니 종이 두 장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설문지에 표시해 보세요. 네.
자신감이 있는가. 미래가 불안한가. 걱정이 많은가. 행복한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따위의 질문들이 있었고 일. 이. 삼. 사. 점수를 매기는 식이었다. 사. 사. 일. 일. 일. 사. 사. 극단적인 숫자들이 내 눈에 띄어 동그라미를 쳤다.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네요.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전보다 불안해하는 빈도는 조금 줄었지만 빈도가 준 것이지 크기가 작아진 건 않았나 보다. 빈도가 준 게 나은지 크기가 줄은 게 나은지 모르겠다 싶다가 둘 다 줄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을 낸다. 젠장. 의사 선생님 저 어떡하죠.
현재보다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는 내 성향 탓일까. 그럼 그건 내 탓이려나. 갑갑하고 불투명한. 점점 삭막해지는 세상의 탓은 아니려나. 뇌가 약한 사람들에게 불안을 야기시키는 세상이 문제 아니려나. 나는 그냥 나를 탓해야 하는 것이려나. 탓의 화살을 어디에 돌리는 게 이로운지 몰라 생각을 그만둔다.
왜 나아지지 않을까. 의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나에게 정말 잘 들렸다. 그러게요.
의사는 약을 증량해 주었다. 그리 놀랍지 않았다. 매번 갈 때마다 약은 증량되었으니까. 약사는 약이 증량되었다며 한 번 더 친절히 설명해 준다. 나는 이제 하루에 열 개 이상의 약을 먹게 되었다. 뭐 건강한 뇌를 가질 수만 있다면. 열 개쯤이야. 스무 개쯤이야. 나는 알약을 한꺼번에 잘 먹는 사람이라 괜찮다. 오늘따라 하늘은 투명하다. 하늘이 이런 색이라서 하늘색을 하늘색이라고 부르는구나. 쾌청한 하늘. 깨끗한 공기. 나는 숨으로 이것들을 마구 내 몸속으로 집어넣는다. 간절하고 급하게 넣는다. 몸속 검은색이 맑은 것들과 섞여 연해지는 기분. 검은색은 회색이 되고 회색은 결국 하얀색이 되겠지. 현재 말고 미래에 말이야. 아. 나는 또 현재 말고 미래를 생각했네. 나도 참 못 말려.
불현듯 춤추듯 살고 싶다고. 어떤 감정이든 춤추듯 느끼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그럼 감정에 형태가 생기고 나는 불안의 춤을 추겠지. 손가락은 간절하게 크게 펴는 게 좋을 거야. 하나. 무릎을 꿇고. 둘.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하늘을 보아. 셋. 어떤 노래가 나오든 그 노래보다 크게 소리를 질러. 넷. 이렇게 춤을 추면 불안도 하나의 형태가 생길 것이다. 춤을 통해 밖으로 나온 불안을 본다. 그리고 그걸 다시 부숴버리는 춤을 춘다. 미안하진 않아. 난 너의 머리 꼭대기에 있어. 불안에게 당돌하게 선언한다.
잘 살고 싶다. 정말 잘 살아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무얼 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일단 춤을 추자. 모르겠으면 모르겠는 춤을 추자. 불안이 오면. 그래. 불안해하자. 그리고 그걸 조각내보자. 최대한 작은 조각을 내어 가루로 만들면 어떨까. 그럼 녹아 없어질지 모른다.
나는 춤을 춘다. 그리고 곧 행복의 춤을 추기로 한다. 지금은 그걸 연습하는 기간이다.